[사설]삼성도 한국도 억울한 ‘애플 편들기’ 美배심원 평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7일 03시 00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북부지방법원 배심원단은 25일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특허와 상용특허 6건을 고의적으로 침해했다며 10억4934만 달러(약 1조1900억 원)의 손해배상을 결정했다. 배심원단은 반대로 삼성이 주장한 통신표준특허 등 5건의 특허 침해를 모두 인정하지 않아 애플에 일방적인 승리를 안겼다.

미 배심원단이 애플의 손을 들어준 ‘둥근 모서리의 사각형’과 같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디자인 특허는 유럽과 한국 법원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권리다. 영국 법원은 삼성의 갤럭시 탭이 애플의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한 데 이어 애플의 영국 홈페이지에 이 내용을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2004년 이전부터 나온 50여 개 제품과 디자인을 근거로 애플 디자인의 많은 부분이 독창성이 부족하며 초기 태블릿 제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독일 네덜란드 한국 법원도 애플의 디자인 특허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였다.

미 배심원들은 평결지침만 109쪽에 이르는 복잡하고 방대한 소송 평결을 22시간 만에 신속하게 끝냈다. 과거 구글이나 오라클 특허소송에서는 평결을 내리는 데만 1주일 정도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벨빈 호건 배심원단장은 “우리는 공정했고 평결에 자신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은 평결이다. 애플 본사 소재 지역의 주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전문성을 요하는 특허 소송에서 자국 기업에 대한 심리적 편향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는 이번 특허소송을 스마트폰 시장에서 급성장한 후발주자 삼성에 대한 애플의 견제로 보고 있다. 삼성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북미시장에서는 애플에 이어 2위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애플이 소송을 통해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누리꾼들은 “모든 차바퀴는 둥그렇다. 애플이 차를 개발했다면 둥근 네 바퀴로 가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애플의 디자인 특허 만능주의를 꼬집었다.

기업이 거액의 자금과 인력을 투자해 확보한 지식재산권은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제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기술과 디자인 특허로 경쟁자들을 사사건건 공격하려 들면 소비자 선택과 기업의 혁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시장이라는 링 밖에서 벌어지는 천문학적 법정소송의 비용은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혁신적 기술과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 경쟁력’이 기업의 명운(命運)을 가르는 핵심요인으로 등장했다. 국가 차원에서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특허 분쟁과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분위기도 강해질 것이다. 제품을 생산하고 특허 분쟁이 벌어지면 사후 협상으로 해결하는 안일한 인식부터 버려야 한다. 지식재산권 보호 인력을 늘리고 제품개발 단계부터 관련 특허를 치밀하게 분석해 빈틈을 최소화해야 한다. 소프트 경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특허 경영으로 탄탄히 무장해야 막대한 금전적 피해와 브랜드 가치 훼손을 초래하는 공세를 막아낼 수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