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北주장에 매너리즘으로 대응하지 않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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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이 그제 ‘조선의 과학자들이 핵융합 반응을 성공시키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했다’고 보도한 데 대한 우리 정부 반응은 대체로 심드렁하다. 북한의 과학수준으로는 의미 있는 핵융합 반응을 성공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따라붙는다. 노동신문은 이 연구를 ‘새로운 에너지 개발을 위한 돌파구’라고 정의했다. 핵융합발전을 해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원자폭탄 제조보다 어려운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같은 이치로 핵융합발전은 수소폭탄 제조보다 더 힘들다. 1952년 수소폭탄 실험을 한 미국도 아직 융합로(爐)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과 공동으로 핵융합실험로(ITER)를 만들고 있는 단계다. 그런데 원전을 지어 본 경험도 없는 북한이 핵융합발전에 도전하겠다니 전문가들은 코웃음 친다. 하지만 북의 선언은 종종 현실화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90년대 초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되자 북한은 체제 방어 및 에너지원 확보 수단으로 핵개발을 시도했다. 이를 막으려는 미국과 협상할 때는 원자력발전을 명분으로 내걸고 원폭 제조를 계속해 2006년과 2009년에 핵실험까지 했다. 1998년과 2009년에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때마다 북은 사전에 위협성 발언을 했지만 우리 정부는 저들의 의도를 파악해 치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상투적인 코멘트나 했다.

북한이 작년 11월 10일 대청해전에서 패한 지 사흘 뒤 북한의 조선중앙TV는 “지금 이 시각부터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김정일이 서해함대사령부를 전격 시찰하고 난 뒤에 조선중앙TV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침략의 아성을 죽탕쳐버리겠다”고 위협의 강도를 높였다. 한미연합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개막에 맞추어 북한군 최고사령부는 올 3월 8일 전군에 전투동원태세를 내렸다.

북이 이처럼 보복의 분위기를 높여갈 때 우리 군은 ‘서해에서는 잠수함 작전이 불가능하다. 수상함 대결에서는 자신 있다’라는 매너리즘(타성)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천안함이 수중 공격을 받았다. 군뿐 아니라 정부 핵심층이 대북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앞으로가 더 큰일이다.

북은 공갈과 진담을 교묘히 섞는 깜짝 쇼로 우리를 흔드는 데 능하다.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우리가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자 북은 소시지 자르듯 압박 수위를 한 단계씩 높여가다 금강산 부동산을 몰수했다. 그런다고 우리가 굴복할 일은 아니지만 저들의 의도를 제대로 읽고 대응해야 한다.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주도적 대응을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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