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한민국 정통성 훼손’ 노린 좌파史觀친일사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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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라는 조직이 만든 이른바 ‘친일인명사전’이 어제 공개됐다. 이 조직이 친일인사였다고 주장하는 4389명의 명단과 함께 일방적으로 짜깁기한 ‘친일 행적’이 실려 있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친일 논란의 불씨를 다시 지피려는 저의와 이 조직의 정체가 궁금하다.

엄혹했던 식민지 지배가 끝나고 60여 년이 흐른 지금, 복합적 삶의 단편적 내용만 골라 친일의 낙인을 찍는 것은 결정적 오류를 범할 수 있고 후손에게 심대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체계적이고 중층적인 학술 연구에 맡기는 것이 정도(正道)다.

사회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방적 명단 발표를 강행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됐던 전력이 있다. 남민전은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확정판결을 받은 공산주의 지하조직이었다. 임 씨의 행적을 거론하는 것은 그들의 주장대로 ‘색깔론’이 아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에 이바지한 인물에 대한 상처내기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 조직은 좌파 인사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너그럽기 그지없다. 광복 전후 좌익의 한 축을 이뤘던 몽양 여운형은 친일단체 활동 행적이 제기됐고, 신문 등에 그의 학병 권유문이 실렸으나 친일 명단에서 제외했다. 좌파 세력들이 ‘여운형의 학병 권유문과 친일단체 관여설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일치하는 결과다.

북한의 김일성 치하에서 고관을 지낸 친일 인사들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이 없다. 이 단체는 이렇게 ‘빠진 명단’에 대해 ‘확실한 자료를 제시하면 수정증보판을 내겠다’며 넘어가려 하지만 우익 인사들의 흠은 티끌도 찾아내면서 좌익 친일인사들에 대한 입증(立證) 책임은 슬쩍 떠넘겨버리는 수법이다.

이 단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정체성 구축에 기여한 인사들에겐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행태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인촌 김성수 전 부통령을 친일 명단에 포함시킨 뒤 일제강점 말기 전쟁 중에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 등에 인촌 이름으로 게재된 징병 권고문 등을 문제 삼았다. 당시 글들은 조선 사회의 지도적 인사들을 전쟁 동원에 앞세우기 위해 이름을 도용한 것이었다. 당시 매일신보의 한국인 기자들은 일제강점 말기 매일신보가 과장과 날조된 허위 기사로 민심을 현혹시킨 선전선동 매체였다고 증언했다. 보성전문학교 학생들도 ‘교장으로 있던 인촌이 학병에 나가라고 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촌이 항일독립운동을 지원한 사실을 신뢰성 높은 증언들에도 불구하고 누락시켰다. 식민 통치하에서 인촌은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 교육 언론 산업발전에 헌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일의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계급인 만주국 중위인데도 명단에 올렸다. 건국에 이은 경제발전의 주역에 대한 모욕주기로 의심된다.

1905년 을사늑약을 규탄한 사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언론인 위암 장지연에 대해서는 몇 편의 글을 문제 삼으면서 ‘대중적 영향력이 큰 언론인 등은 더 엄중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친일 명단에 올렸다.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 측은 ‘위암은 생애 말년까지 일제의 감시 대상이었으며, 항일독립지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을 친일파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학계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멋대로 친일파로 단죄했다.

좌파사관(史觀)에 기울어진 인물들이 주류인 조직이 친일 여부를 심판하는 재판관처럼 행세하는 것부터 가당치 않다. 이 조직은 지난해 ‘친일 명단’이란 것을 내놓은 뒤 마감 날짜를 정해 이의신청을 받았고, 일부 인사들에 대해 아량이라도 베풀 듯 명단에서 제외시켜 줬다. 무슨 자격으로 이런 권력을 휘두르는지 가소롭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해 정통성이 북에 비해 부족하다는 좌파사관의 확산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에 단호한 대처로 맞서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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