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경제 下手의 나랏돈 풀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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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으로 나라 망하는 건 순식간
확장 재정하려면 정책 방향 먼저 수정해야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선진국 가운데서는 이탈리아가 포퓰리즘 정치의 표본으로 꼽힌다. 역대 정부가 연금개혁과 공공부문 축소는 도외시한 채 빚을 늘려가며 유권자들에게 선심을 쓴 결과 표는 얻었지만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다. 부채를 갚으라는 독촉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다가 지난주 국가신용등급이 투기등급 바로 위인 Baa3까지 떨어졌다. 포퓰리즘 연합정부를 이끌고 있는 오성운동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1000억 달러어치의 금괴를 단기 경기부양에 사용하자고 목소리를 높여 또 한번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잘되기는 어려워도 망하는 건 순식간이다. 이탈리아가 2011년 우량등급인 Aa2등급에서 투기등급 직전까지 추락하는 데 10년이 채 안 걸렸다. 슈퍼 팽창예산 편성에다 어제 국가부채를 동원한 추경 편성을 한 우리 정부나 현금복지를 남발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을 보면 반드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엊그제 ‘소득주도성장과 확장적 재정운용’ 토론회에서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곳간을 활짝 열어야 할 때”라고 말한 사람은 홍장표 대통령직속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이다. 현재 한국 경제가 좋지 않은 것은 세계 경제가 좋지 않기 때문인데 이에 대처하기 위해 추경을 비롯해 빚을 내서라도 나랏돈 푸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뻔뻔스러운 발언이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조만간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큰소리치더니 이제 와서 우리 경제가 나쁜 것을 세계 경제 탓으로 돌렸다. 매달 30만∼40만 명씩 늘던 취업자 수가 10만 명 이하로 떨어지고, 못 살겠다는 자영업자의 비명이 터져 나온 게 이미 작년 초여름이다. 대다수 주류 경제학자들이 경제학 족보 저 끄트머리에 있는 정책을 무리하게 적용하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수도 없이 경고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다.

그보다 더 뻔뻔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얼마든지 빚을 낼 수 있다. 이른바 확장적 재정운용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국가든 기업이든 빚은 그 자체보다 빌린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제까지 해온 것으로 봐서는 지금 경제팀이 경기를 되살릴 실력을 갖춘 팀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떻게든 나랏돈이 풀려 소비가 되면 생산으로 이어져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살릴 것으로 본다면 재정 낭비란 말은 왜 있겠는가. 일자리 안정자금처럼 잘못된 정책으로 당초 지출할 필요가 없었던 곳에 땜질용으로 쓰이는 것은 더욱 곤란하다.

후세에게 부담을 줘가면서까지 나랏빚을 늘리려면 이전 정책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설득력 있는 경제 회생 비전과 실행 방안을 먼저 제시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 외교 문외한인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을 주중 대사라는 막중한 자리에 보내는 걸 보면 대통령 차원에서 기존의 정책에 대한 수정 의사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라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그 틀에 다시 세금을 쏟아붓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납세자에게 정말 염치없는 노릇이다.

바둑에서 아마추어와 프로 혹은 하수와 고수를 가르는 기준 중에 하나가 실착을 했을 때의 대처 태도다. 고수는 실착을 금방 깨닫고 손을 빼 다른 곳에서 반전의 기회를 찾는다. 반면 하수는 실착인지 아닌지 아예 모르거나, 알았더라도 이미 놓인 돌에 연연하다 패착으로 만들고, 판 전체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경제 운영과 국가 부채도 마찬가지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이탈리아#포퓰리즘#확장 재정#추경#소득주도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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