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완준]한국, 中 일대일로-美 인도태평양 선택의 날이 다가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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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최근 만난 중국 측 인사들에게 “중국은 한 국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참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고 물었다.

지난달 말 중국 정부가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이낙연 국무총리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이 일대일로 건설에 적극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고 하자마자 한국 정부가 부인했던 내막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제3국 시장 진출에서 중국 일대일로와 협력하듯 한국도 협력하겠다는 취지로 말했지 참여한다고 말한 적 없다”는 게 당시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이었다.

일대일로는 해외 인프라 건설 투자를 통해 주변 국가들을 연결하겠다는 중국의 대형 프로젝트다. 지금까지 125개 국가가 중국과 일대일로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 통상적이라면 이들이 일대일로 참여국일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생각은 달랐다. 대체로 “협력 문서에 서명하지 않은 제3국 시장 진출 협력도 일대일로 정신에 동의한 것이니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중국 입장에선 한국도, 일본도 이미 일대일로 참여 의사를 밝힌 셈이다. 일대일로 참여의 문턱을 낮춘 중국은 무섭게 세를 불려가고 있다. 19일 베이징의 중국 외교부에서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주제는 25∼27일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왕 위원은 정상이 참석하는 37개국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했다. 대표단을 보내는 국가가 150여 개국에 달한다고 했다. 한 국가가 여는 행사로는 분명 보기 드문 큰 규모다. 한국과 일본도 대표단을 보낸다. 한국 정부의 구상처럼 신남방정책과 일대일로를 연계해 한국 기업 진출에 도움이 된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미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대일로가 ‘약탈적’이라고 주장하며 지난달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를 강하게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로마는 (미중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칠 수 없다는 걸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일대일로 포럼에 공식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다. 최근 베이징에서 만난 한 일본 인사의 말이다. “미국이 일본과 무역 협상을 벌이면서 일본에 일대일로에 참여하지 말라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요.” 한국도 미국의 압박에 직면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달 말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 게 심상치 않다. 한국이 일대일로와 접점을 찾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신남방정책을 일대일로를 견제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연결시킨 데는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다.

왕 위원은 회견에서 “(미국이) 다른 국가의 일대일로 참여를 막을 권리는 없다”고 직격탄을 날리며 “더 많은 나라가 더 적극적으로 일대일로 공동 건설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지난달 말 정부 당국자는 “일대일로에 대한 한국 입장은 사실 모호하다”며 곤혹스러워했다. 모든 분야에서 미중 패권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을 강요당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모호하게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일대일로#해외 인프라 건설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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