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승옥]‘김수한무~’ 닮은 작명 논란… 야구장 이름 두고 왜 싸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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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197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이다. 김 씨 집안 5대 독자의 장수(長壽)를 기원하기 위해 좋은 단어를 다 갖다 붙이다 보니 72글자나 됐다. 이름을 부를 때는 한 글자도 빠뜨려서는 안 됐다. 그래야 오래 산다고 했다. 어느 날 5대 독자가 물에 빠져 허우적댔다. 하인들은 엄명대로 긴 이름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부르려다가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오래 살기 위해 지은 이름이, 역설적으로 단명(短命)을 불렀다.

‘마산야구센터 창원NC파크 마산구장.’ 메이저리그급 시설로 화제가 되고 있는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신축 구장의 공식 이름이다. 당초 ‘창원NC파크’라는 이름이었지만 시의회가 뒤늦게 ‘마산구장’이라는 단어를 추가하면서 상당히 길어졌다. 옛 마산 지역의 민심을 대변했다고 한다. 대상을 구체화하는 이름 본래의 기능도 약화됐고, 발음하기도 불편하게 됐다.

야구장 건설에 100억 원 넘게 보탠 뒤 작명권을 받았던 NC 구단은 당연히 반발했다. 그러자 마산지역 출신 의원들이 주도한 시의회 측은 “한 글자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렸다. 창원 시민들의 여론도 사분오열되고 있다. 세 개 도시(옛 창원시, 옛 마산시, 옛 진해시)를 묶어 탄생한 창원시. 지역 통합에 기여할 걸로 기대를 모았던 신축 야구장이 이름 논란으로 분열을 조장한 꼴이 됐다. ‘김수한무∼’ 코미디와 많이 닮았다.

지금까지는 코미디였다. 그런데 서서히 막장 드라마로 가고 있다. 이해 당사자들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NC 구단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야구장 공식 명칭을 ‘창원NC파크’로 해달라고 정식 공문으로 요청했고, KBO는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소송을 해서라도, ‘창원NC파크’로 돼 있는 야구장 정문 간판과 전광판을 뜯어내겠다는 입장이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분위기다.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해 문제를 일으킨다’는 야구팬들의 비난이 거세다. 동의한다. 하지만 프로야구팀은 기본적으로 연고지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지역사회가 야구를 비중 있게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다. 또 100여 년 마산 야구의 역사도 엄연한 것이 사실이고, 옛 마산 지역민들의 상실감도 작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구단과 시의회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점이 됐다. 해법은 있을 것이다. 야구장 이름에 마산을 넣지 않더라도, 콘텐츠에 마산을 녹여 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광복 직후 아마추어 야구의 강자였던 마산 고교팀들. 슈퍼스타 감사용의 마산고와 악바리 공필성의 마산상고가 벌이는 OB대항전은 흥미로울 것이다. 화끈했던 ‘마산 아재 응원’도 세련된 캐릭터로 변신시키면 NC 응원에 활력을 불어넣지 않을까.

NC 구단은 이런 기획을 아주 잘한다. 시의회가 지원해주면 마산 야구의 과거는 현재, 미래와 호응하면서 계승될 수 있다. 그러면 마산 야구는 창원시 전체의 유산으로 승화할 것이다. 반대로 마산 야구를 간판에 넣는 것에만 집착하면 마산 야구는 자칫 생명력을 잃은 박제가 될 수 있다.

왜 창원에서 NC 다이노스가 야구를 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스포츠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사회 통합 기능’이다. 야구로 인해 창원이 분열된다면 굳이 야구를 할 필요가 없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프로야구#nc 구단#신축 구장 공식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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