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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철희]북-미 ‘외교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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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철희]북-미 ‘외교의 사망’

이철희 논설위원 입력 2019-03-15 03:00수정 2019-03-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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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논설위원
“점진적 비핵화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해법(total solution)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합의될 때까진 아무것도 합의된 게 아니다. 북한은 핵·미사일은 물론이고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약속해야 한다.”

사흘 전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워싱턴 좌담회 발언에 대해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대북정책의 ‘극명한 코스 변경’이라고 평가했다. 초강경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1월 말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동시적 병행 접근’을 제시했던 협상파 비건마저 그간의 유연한 자세에서 벗어나 강경 노선으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비건에 그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가세했다. 그는 김정은에게서 적어도 6차례 비핵화 약속을 직접 들었다며 “말이야 쉽다. 행동만이 가치가 있다”고 압박했다. 비건 말대로 ‘미국 정부의 완전한 입장 통일’을 과시하려는 모양새다.

이런 강경 기조를 두고 일부 매체는 “이제 협상은 끝장났다(doomed)”고 했다. 보수 성향의 전문가들도 “최대지향주의(maximalism)는 곧 외교의 사망이다” “김정은에게 던진 완전한 항복(total surrender) 요구다”라고 했다. 이들 말대로 협상이 종말을 고했다고 진단하기는 이르지만 북-미 간 대화의 교착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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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비건의 두 차례 공개 발언을 꼼꼼히 살펴보면 하노이 회담 전후로 말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강조점이 달랐을 뿐이다. 그가 제시한 ‘동시적 병행 접근’이 북한이 고집하는 ‘단계적 동시 행동’과 같은 말은 아니었다. 그는 제재 완화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실패도 선택일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유연한 접근법이 자취를 감춘 것은 분명했다.

워싱턴 좌담회에서 비건은 표현의 자유마저 잃은 듯했다. 그건 마치 내키지 않는 반성문을 읽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 좌담회 참석자는 “북한식 자아비판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미국의 협상파는 하노이 결렬의 첫 희생양이 됐고, 그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북한의 대미 협상라인이 혹독한 총화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만큼 ‘외교의 공간’이 협소해졌고 갈수록 소멸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강경론 대두는 자폐(自閉) 모드로 들어간 북한의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북한은 허공의 인공위성을 향해 도통 알 수 없는 무언의 메시지만 보내고 있다. 비건조차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동향에 대해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북한의 수상쩍은 움직임은 미국의 경계심을 높였고 강경파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하면서 시작된 북-미 대화 1년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차 싱가포르 회담은 취소 사태까지 겪고서야 어렵게 성사됐고, 이후에도 양측이 한 차례씩 고위급 방문을 취소하는 등 곡절이 많았다. 그렇게 하노이까지 이어졌지만 두 정상이 낯 붉히지 않고 헤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 북-미 간에는 대화 채널이 단절된 채 서로 엇갈리는 신호만 발신하고 있다. 아직 양측의 말은 조심스럽지만 이대로 가다간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외교의 사망을 알리는 부고장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북한엔 숙고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교의 문을 닫아버릴 요량이 아니라면 오해와 불신을 낳을 행동은 금물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사이가 가까워지는 건 시간이 걸리지만 멀어지고 갈라서는 건 순식간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북-미 외교협상#비핵화#스티븐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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