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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태훈]닥터헬기와 런던 에어 앰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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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태훈]닥터헬기와 런던 에어 앰뷸런스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입력 2019-02-13 03:00수정 2019-02-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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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정책사회부장
붉은색 응급헬기가 영국 런던 템스강 위를 날아오른다. 종횡무진 런던 하늘을 가로질러 테니스 코트만 한 평지만 있으면 어디든 착륙한다. 도심 광장, 빌딩 옥상은 물론이고 도심 내 도로, 심지어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작은 잔디밭에도 내려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한다. 출동 후 12분 안에 런던 전역의 환자 곁으로 갈 수 있다.

영국 응급의료의 첨병인 ‘런던 에어 앰뷸런스(London’s Air Ambulance)’의 현재 활약상이다.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운항의 자유와 대원 42명의 헌신적인 활동 덕분에 런던 에어 앰뷸런스는 1989년 설립 이후 30년간 약 4만 명의 응급 상황에 대처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죽음을 계기로 열악한 응급의료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 응급환자를 골든타임에 치료받도록 하는 닥터헬기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에도 긴급 출동할 수 있는 닥터헬기가 전국에 6대가 있지만 런던처럼 어디든 가지 못한다. 닥터헬기가 환자에게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환자가 닥터헬기로 달려와야 한다. 닥터헬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사전에 허가된 ‘인계점’이란 곳으로 앰뷸런스가 오도록 돼 있는 것이다. 인계점은 전국에 828곳(지난해 12월 기준)이 있다. 하늘길로 신속히 이송할 수 있는 닥터헬기를 놔두고, 헬기와는 속도가 비교도 되지 않는 앰뷸런스가 교통체증을 뚫고 인계점까지 달려와야 한다니, 세계 11위 경제대국에서 이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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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원인은 우리나라 닥터헬기가 ‘인계점’에서만 이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봇대와 전깃줄 등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서 헬기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보건복지부 응급의료 전용헬기 운영 기본지침에는 ‘닥터헬기는 인계점을 중심으로 운영해야 하며, 응급구조 요청자는 인계점으로 와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응급 환자가 3명 이상인 경우나 대형 재난일 때 인계점이 아닌 곳에 이착륙할 수 있는 예외가 있지만 1, 2명이 다친 일반 응급상황에서는 아무리 급한 환자가 있어도 인계점이 아니면 닥터헬기가 갈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해상훈련에 나선 해경 승무원 박모 씨가 양묘기(갑판에서 닻을 내리거나 감아올리는 장비)에 다리가 끼어 왼쪽 허벅지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지만 헬기 이송 지원을 받지 못해 구급차로 이동하다 결국 사망했다. 해경은 119구조대와 닥터헬기 운영업체에 헬기 지원을 요청했지만 사고지 주변에 인계점이 없다는 이유로 닥터헬기가 이륙을 하지 못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권역외상센터장)는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환자가 위급한데 인계점에만 착륙하라는 규정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8월까지 닥터헬기 이착륙이 기각되거나 중단된 건수가 80건에 이르렀다. 기각, 중단된 주요 사유로는 ‘비(非)인계점’이 61.3%로 가장 많았다. 또 우리 닥터헬기는 이르면 5월 도입되는 아주대병원 닥터헬기를 제외하고는 안전을 이유로 야간운항을 하지 않아 ‘반쪽 닥터헬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윤한덕 센터장은 다치고 병든 어려운 이들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의 육신은 갔지만 고귀한 정신은 국민의 마음속에 남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말은 더 안 해도 될 듯하다. 실천이다. 닥터헬기부터 마음껏 날아다니게 하자.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jefflee@donga.com
#닥터헬기#런던 에어 앰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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