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규제 샌드박스 1호부터 ‘건건이 심사, 무늬만 규제프리’ 우려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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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제1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회를 열어 서울시내 수소충전소 설치와 유전자 분석을 통한 질병 확률 검사 등 4가지를 ‘규제 샌드박스’의 첫 대상으로 승인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저해되지 않는다면 기존 법령이나 제도에도 불구하고 일단 실증 테스트를 하거나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빠르게 발전하는 신기술과 신산업을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처음 시도하는 포괄적 규제개혁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규제 샌드박스가 본격적인 ‘혁신의 실험장’이 될 것인지는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렸다. 당초 이 제도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으려면 법과 제도 없이는 불가능했던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벗어나, 안 되는 것만 명기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능하게 하는 선진국형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 부처 공무원들로 구성된 심의회를 열어 하나하나 허가하는 방식인데 이래서야 혁신적 창의적 제품들이 얼마나 시장에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속도도 문제다. 세계 많은 나라 정부가 규제를 개혁하고 신산업을 키우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2014년 영국이 처음 핀테크 분야에 도입한 이래 일본 등 10여 개국이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2017년 규제 샌드박스를 창설하고 핀테크는 물론 AI, 개인정보 서비스, 스마트시티 등으로 확대해가면서 미래 산업을 일으키고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광속(光速)으로 변화하는데 몇 달에 3, 4개씩 ‘규제 프리’ 제품이 나와서야 다른 나라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있겠나.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위한 5개 법안 가운데 금융혁신법과 규제자유특구법은 4월에 시행된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열흘 동안 금융 규제 샌드박스 사전 신청을 받아 보니 88개사에서 105개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동안 금융 산업이 얼마나 많은 규제에 시달려왔는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더 적극적이고 융통성 있게 규제 샌드박스를 운용해야 한다. 우선 산업융합 시대에 부처별로 신청받는 칸막이부터 제거해야 한다. 앉아서 신청을 받는 데 그치지 말고 한국이 집중해야 할 미래 전략 산업을 콕 찍어 선제적으로 ‘규제 프리’를 선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부지런히 들어 문제점을 고치고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야 규제 샌드박스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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