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정동]산업을 아는 금융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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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단계인 ‘팰컨9’ 발사 성공은 보험社가 위성기술 알기에 가능
국내 은행엔 산업 전문가 없어 혁신 모른 채 부동산대출에 급급
금융규제, 혁신지원으로 바꾸라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미국 스페이스엑스사의 ‘팰컨9’ 로켓이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위탁한 64개 소형위성을 싣고 3일 미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이 로켓은 1단 추진엔진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완전히 안정화되지 않은 초기 단계다. 쉽게 말해서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어렵게 만든 비싼 위성을 이런 위험한 로켓에 맡긴 사람이나 또 그것을 맡아 쏜 사람이나 도전정신이 남달라 보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함의 이면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보험이다. 발사 전 보험, 발사보험, 궤도보험, 기타보험 등 발사에서부터 운용까지 단계별로 세분된 보험이 위험을 분산한다. 스턴트맨이 높은 곳에서 자신 있게 몸을 던질 수 있는 이유와 같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안전매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성공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또 한 번 장족의 성취를 했지만 스페이스엑스사도 추진체를 세 번째 회수하는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며 한 단계 발전했다. 보험이라는 금융의 한 영역이 산업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위험한 물건에 대해 보험상품을 만들어 팔려면 보험회사 스스로 위성 발사와 관련된 여러 기술의 장단점과 실패 위험을 세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궤도를 떠도는 우주쓰레기에 위성이 부딪혀 작동이 멈출 확률까지 고려한다. 그래서 이런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보험 및 재보험회사에는 고수급 엔지니어들이 우글우글하다. 보험뿐만 아니다. 벤처펀드업계와 은행도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혁신적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금융과 산업은 서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부문에 산업전문가가 드물고 조직도 취약하다. 산업에서 일어나는 혁신적 도전을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 지역금융과 같은 관계금융의 기반이 취약해진 것도 무시하지 못할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본과 독일의 히든 챔피언 기업들이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산업적 이해를 축적해 온 지역금융으로부터 많은 자금을 지원받는 것과 대비되는 일이다.

산업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은행은 더 안전한 부동산담보대출로 쏠릴 수밖에 없다. 최근 은행들이 기록적인 수익을 내지만 80%가 넘는 수익을 순이자부문에서 벌어들인 탓에 손쉬운 이자장사만 하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투자은행(IB)은 아직 요원하고 벤처 관련 돈줄은 여전히 정부자금에 의존한다. 은행은 혁신금융에서 거의 존재감이 안 보이고, 산업보험업계의 수준도 늘 같은 자리다. 요즘처럼 유동성이 풍부한 때가 없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 그러나 산업으로 자금의 물줄기를 돌려줄 똑똑한 브로커리지(brokerage) 기능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1970, 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위험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대해 사실상 정부가 보증을 서면서 금융이 안심하고 자금을 제공했다. 산업의 위험을 국민이 대신 져준 셈이다. 그 후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산업도 고도화됐고 금융부문의 덩치도 커졌다. 그러는 동안 금융이 산업을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시스템도 갖추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우리 산업도 이제는 그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개념 설계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자면 산업의 그림자인 금융의 패러다임부터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금융부문의 산업 이해 역량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기술과 산업 전문가들을 더 많이 활용하고, 지금부터라도 산업금융의 시행착오 경험을 축적하면서 조직적 역량을 끈기 있게 키워 나가야 한다.

금융규제도 혁신적 시도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기준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신기술에 수반된 위험을 민간이 스스로 평가하고, 책임 있게 투자할 수 있도록 과도한 보호성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그러면 위험을 분석하는 일이든, 투자를 분산하는 일이든 다양한 영역에서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들이 등장할 것이다.

나아가 정책적 의지만 표명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기업을 상대하는 데스크 근무자들의 면책규정을 전향적으로 다듬고, 성과 평가기준도 혁신친화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 기업가들도 과감히 점프하고 싶다. 아스팔트 위가 아니라 폭신한 매트 위로.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팰컨9#보험상품#금융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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