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진의 필적]〈15〉탁월하고 노회한 이승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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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제일강산’.
이승만의 ‘제일강산’.
‘건국의 아버지’ 또는 ‘분단 책임자’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이승만만큼 논쟁적인 인물도 드물다. 글씨로 분석한 이승만은 어떤 인물일까? 우선 역대 대통령 중 단연 가장 뛰어난 글씨의 소유자다. 그의 글씨는 기운이 웅혼하고 외형적 꾸밈이나 필획의 교묘함보다는 선비적 기품이 두드러진다. 한글이나 영어 필체도 유려하고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시작한 글씨 연습을 평생 계속한 때문도 있지만 높은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승만은 당시 김일성, 미국의 트루먼, 소련의 스탈린 등과 견줘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뛰어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승만이 노회하고 기회주의적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은 글씨에도 나타난다. 그는 글씨를 위아래로 매우 길게 쓰는데 자신감이 강하고 용기 있고 호방한 성격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특징 중에는 독창적, 즉흥적, 감정적, 변덕스러움, 기회주의자라는 것도 있다. 유연성이 있다는 것은 융통성과 사회성이 있는 인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고 남에게 비판적이지 않으며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특히 첫 글자가 큰 것은 무대 기질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대중 앞에 서기를 좋아하고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특징은 조지 워싱턴,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등 많은 정치지도자에게서 나타난다. 링컨이나 간디는 많이 다르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에 불과하다.

글씨가 크고 위아래로 긴 것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항일운동가의 글씨체다. 반듯하고 규칙적인 것은 내면이 확고하고 원칙을 중시하며 보수적인 성향임을 보여준다. 세로획의 마지막을 치켜 올린 것을 보면 고집이 강하고 의지가 굳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승만의 글씨는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한데, 이를 보면 그가 단순 명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주관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그의 용기, 굳은 의지, 판단력, 노회함이 아니었으면 민족의 명운이 걸려 있는 복잡한 당시 정치 상황을 풀어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그의 기회주의적이고 교활한 면이 민주주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이승만#제일강산#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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