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임태희 “北을 뗑깡이나 부리는 집단으로만 생각해선 안 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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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前 대통령실장·한경대 총장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5일 인터뷰에서 “우리 정서에서는 일을 어떻게 되게 만드느냐는 것과 상관없이 협상이나 대화가 깨지더라도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 원칙과 소신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일이 되는 게 더 중요하고 제자리 뛰기를 하는 한이 있어도 북한과의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대 제공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5일 인터뷰에서 “우리 정서에서는 일을 어떻게 되게 만드느냐는 것과 상관없이 협상이나 대화가 깨지더라도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 원칙과 소신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일이 되는 게 더 중요하고 제자리 뛰기를 하는 한이 있어도 북한과의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대 제공

 
《 북한은 신뢰할 수 없고, 뒤통수만 치며, 돈을 더 얻기 위해 떼를 쓰는 집단이라고 여기는 시각이 있다. 그들은 역대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은 ‘좌파정권이 자신들의 필요성 때문에 돈을 주고 산 행위’이며, ‘북한은 대화가 아니라, 항복시켜야 하는 상대’라고 여긴다. 수십 년간 북한이 보인 행동을 생각하면 이런 시각을 잘못이라고 탓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믿지 못할 집단과의 대화란 무의미하니 군비 증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까.

이명박(MB)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현 한경대 총장)은 “보수도 이제 북한에 대해 반공 프레임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설사 제자리 뛰기가 되고, 쳇바퀴를 돌더라도 (북한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남북 정상회담이 보통 ‘우리가 필요해서 요청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MB 정부 때는 북한이 먼저 요청했다.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2009년 8월 20일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조문사절이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를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비공개로 밤늦게 나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니 청와대 방문을 연결시켜달라고 했다. 다음 날 바로 대통령 주재 조찬회의가 열렸는데 구두메시지가 뭔지와 면담을 허용할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그는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었다.)

―구두메시지란 게 뭔가.

“그들만의 독특한 형식인데…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나중에 청와대 방문 때 보니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직접 전하는 말씀입니다’ 이러면서 적어온 것을 읽는 형식이었다. 남북 정상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이 조문단을 굳이 만나지 않을 이유가 있었나.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누구는 북한의 생색내기에 이용당하니 안 된다고 하고, 또 누구는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만나면 안 된다고 하고….” (미국 허락을 받고 만나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러다가 조문단에 하루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 설득을 내가 하게 됐다. 조문단이 하루 더 머무르려면 반드시 김 위원장의 허락을 얻어야 하니까, 머물면 의지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거다.”

―쉬운 설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김양건 통전부장과 본격적인 회담을 하기 전에 ‘김 위원장이 혹시 나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안다’고 하더라.” (어떻게 아나? 간첩인가?) “하하하. 북한과 사업을 하는 조선족 사업가가 있는데 과거에 ‘김 위원장에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편에 한국영화 CD 10개를 보냈는데 그 얘기를 했다. ‘우리 장군님께 영화 보내주지 않았냐’고…. 그래서 신뢰가 있다고 생각하고 본론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알겠다’며 통신 담당 여군 장교를 부르더라. 하얀 장교복을 입은….” (꽤 늦은 시간이었을 텐데….) “안 그래도 너무 늦어서 괜찮겠냐고 했더니 ‘우리 장군님은 새벽까지 안 주무신다’고 하더라.” (영화광이니까….) “하하하, 답이 바로 올 거라고 했다. 진짜 새벽 1시가 넘은 것 같은데… 답이 왔다. 허락이 떨어졌다고…. 그때부터 진짜 더 마셨다.”


―당시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데는 정부 내 강경파가 온건파를 이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북한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게 해서 무릎을 꿇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이 라인에서 끊임없이 대통령에게 백악관 분위기가 북한에 대해 강경하다며 정상회담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강경파는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이 진정성이 없다고 본 건가.

“그렇다. 그런데 조문단이 돌아가고 2, 3주 정도 지나 북측에서 ‘왜 청와대는 장군님의 대화 제의를 무시하느냐’는 말이 간접적으로 들려왔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아무 행동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대통령께 알렸더니 그제야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답을 주기로 했다. 그 답을 가지고 상하이에서 다시 김양건 통전부장을 만났다. 싱가포르 회동 전이다.”

당시 임태희-김양건 라인은 2009년 9월 상하이, 10월 싱가포르 회동을 통해 △정상회담 개최 △국군포로 및 납북자 고향 방문 △한반도 비핵화 △이산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 △인도적 지원 △국군유해 발굴 등 6개 항목에서 의견 접근을 봤다.

―그동안의 북한을 보면 강경파 시각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강경파는 입장도 간단명료하고 말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러면 도대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가. 무릎 꿇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전쟁밖에 없지 않나.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우리 현실, 특히 보수 정부에서 대화파는 아주 힘들다.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자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또는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몰린다. 그 와중에 북한이 도발을 하면 정말 곤란해지고…. 일이 어떻게 되는지와는 별개로 강경한 사람이 마치 원칙과 소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도 있고….”

―왜 북한이 먼저 제안하고, 추진도 더 적극적이었을까.

“이명박 정부 초기였기 때문에 힘이 있을 때 김 위원장이 뭔가 틀을 잡아 놓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당시 김 위원장 수행 의사들이 8명에서 13명으로 늘었다는 말도 있었다. 병이 위중하다는 뜻이지…. 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을 제안해서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올 차례 아니냐’고 했더니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런 요인이 겹친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게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산다’는 시각이다.

“그래서 북측과 프라이카우프(Freikauf) 방식으로 정상회담 조건을 이행하기로 협의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미리 다 주는 게 아니라, 정상 간에 합의한 내용이 실행될 때마다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이 상봉하면 얼마, 고향 방문을 하면 얼마를 지원하는 식이다.”(프라이카우프는 ‘자유를 산다’는 의미의 독일어.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려오기 위해 현금과 현물을 동독에 제공한 방식을 말한다. 1963∼1989년 3만3755명을 데려오고 대신 34억6400만 마르크에 해당하는 현물을 지불했다.)

―정상회담 전에 돈을 주면 사는 것이고, 후에 주면 아닌가.

“강경파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주나 저렇게 주나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우리가 정상회담에서 요구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북한도 원하는 것이 있다. 우리 요구를 북한이 실행하면, 우리도 북한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게 당연하지 않나. 프라이카우프 방식까지 돈 주고 사는 것으로 간주하면 북한보고 아무 조건 없이 우리가 원하는 걸 다 하라고 하는 것인데 그건 불가능하다고.” (그랬더니 뭐라 하던가?) “국정원 말은 북한 경제가 절박할 정도로 안 좋으니 3개월만 압박하면 무릎 꿇고 나온다는 거다. 되긴… 6개월이 지나도, 그 이후도 아무 것도 안 됐는데…. 강경파는 북한을 ‘믿을 수 없고, 뒤통수만 치고, 뗑깡이나 부리는 집단’으로 치부하는데 그런 시각으로는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없다.”

―솔직히 그런 면이 있지 않나.

“강경파는 북한이 늘 우리에게 더 얻어내기 위해 떼를 쓴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그런 잘못된 버릇을 들였다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북한도 원하는 것이 있다. 그걸 주고받는 건 뒷거래나 이면 합의가 아니다. 그런데 북한이 약속을 지키는 것 같으면 우리를 이용한다고 보고, 깨면 ‘그것 봐라’ 한다. 철저하게 상대를 불신하면서 어떻게 남북관계가 진전되겠나. 당시에도 북한은 정상회담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한 뒤에 우리가 지원해주는 것조차 ‘북한의 외화벌이’나 ‘우리가 삥 뜯기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걸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남북관계가 잘 안된다.”

―성사되지 않았더라도 정상회담 추진 과정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경험이다. 혹시 박근혜 정부에 그런 노하우를 알려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당 공동선대위원장들과 함께 저녁을 했다. 그 자리에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과정을 담은 서류를 직접 줬다. A4지 3장인데 비핵화 방안 등 김양건 통전부장과 논의된 얘기였다. 비핵화 문제는 북한이 당시 상황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된 불가역적 비핵화 조치를 취한 뒤 6자회담에 복귀하는 걸로 의견접근을 봤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니 혹시 보충 설명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답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는 루트가 없어 못 했다.”

―당시 상황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된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가 뭔가.

“가장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는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못하게 핵 연료봉 저장소를 시멘트로 봉해서 묻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김 통전부장에게 ‘냉각탑 파괴 같은 쇼 말고 핵 연료봉을 폐기하는 건 어떠냐’고 했더니 ‘그건 다시 논의해봅시다’라고 하더라.”

―자유한국당은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도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도 장사로 여긴다”며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아직도 반공보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공화당 출신의 닉슨 대통령이 미중 수교를 이뤘듯이 오해받을 우려가 없기 때문에 보수는 공산권과의 문제를 풀 때 강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솔직히 (왜 정상회담이 필요한지에 대한) 역사 인식도 부족하고…, 언제까지 옛날처럼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노래만 부를 것인가. 그런 시각이면 나도 친북좌파인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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