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산소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공기도 일종의 기호품이 된 것일까. 영국의 청정 공기 판매업체 ‘이더’가 내놓은 상품 목록을 보면 웨일스, 요크셔, 도싯 같은 원산지(?)가 당당히 표시돼 있다. 과연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가격은 한 병(580mL)당 80파운드(약 11만8600원)로 모두 동일하다.

▷이 회사가 ‘에어파밍(air farming)’으로 이름 붙인 대기포집 방법은 단순하다. 먼저, 높은 산과 깊은 계곡 등을 찾아가 곤충 채집망처럼 생긴 기구로 새벽 공기를 모은다. 그런 다음 평범한 밀폐용기같이 보이는 유리병에다 그 공기를 담으면 끝. 완제품은 주로 중국에 수출한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지리산의 청정 공기를 캔에 포장하는 공장이 준공됐다. 한 통에 1만5000원. 해발 800m 출입통제구역의 신선한 공기를 그대로 담아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올 들어 중국발(發) 고농도 미세먼지와 황사의 습격이 계속되면서 대기환경 예보를 체크하는 것이 한국인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눈도 따갑고 목도 따갑고, 미세먼지의 독한 성분이 우리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체감될 정도다.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면서 신선한 공기를 돈 주고 사는 일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미세먼지의 기승에 공기캔과 더불어 휴대용 산소캔이 빠르게 확산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온라인 마켓에 따라 산소캔 매출이 90∼166%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노스크라고 불리는 코 마스크부터 값비싼 공기청정기의 매출도 급증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공짜다.’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남긴 말이다. 사랑 우정 가족 등이 당연히 그 소중한 것에 포함되지만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함께 마음껏 누린 공기 역시 거저 받은 선물이었다. 자연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공기를 돈 내고 사먹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되는 그날. 맑은 공기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사치품이 되는 그때. 인류는 환경의 역습에 대해 뒤늦은 깨달음을 얻게 되지 싶다.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에 가격표가 없었던 이유는 바로 가격을 매기기 힘들 만큼 귀한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란 사실을….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공기#에어파밍#air farming#지리산 청정 공기#미세먼지#황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