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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73>수원 나혜석 생가터와 우울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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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73>수원 나혜석 생가터와 우울한 자화상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입력 2017-12-07 03:00수정 2017-12-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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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 화성행궁 근처의 나혜석 생가터.
1948년 12월 10일, 서울 용산구 시립병원 자제원(慈濟院)의 무연고 병실에서 한 여성이 숨을 거뒀다. 인근 원효로 노상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뒤 행려병자로 처리되어 이곳으로 옮겨진 여성이었다. 52세. 행색은 초라했고 얼굴은 피폐했다.

나혜석(1896∼1948).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가부장적 관습에 맞서며 한 시대를 풍미한 선구적 여성이었지만 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허망하고 처연했다.

경기 수원시 화성(華城) 행궁 주변의 행궁마을. 이곳엔 사방으로 골목들이 고즈넉하게 펼쳐져 있다. 벽화 골목도 있고, 미술 조형물도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언제부턴가 그 골목길을 나혜석 옛길이라 부른다. 이리저리 얽힌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느 야쿠르트 대리점 옆으로 ‘정월 나혜석 생가터’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나혜석이 태어난 곳. 집은 사라졌고 터만 남아 있다. 주변 골목길 담장 곳곳엔 나혜석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나혜석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글과 그림도 있다. ‘남녀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맞섰던 예술가. 꽃보다 더 붉은 영혼을 지닌 예술가’라는 안내판 문구도 보인다. 그 모습들이 때론 정겹고 때론 쓸쓸하다.

2015년 11월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나혜석 자화상’의 기증 소식이었다. 기증자는 나혜석의 막내며느리 이광일 씨. 막내아들은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였다. 2015년 4월 세상을 떠난 김 전 총재의 유지에 따라 부인 이 씨가 나혜석의 작품들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 내놓은 것이다. 막내아들인 김 전 총재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나혜석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화성 행궁 바로 앞에 있다. 나혜석 생가터에서는 걸어서 5분 거리. 젊은 시절, 나혜석은 이곳을 열심히 지나다녔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결국 갈 곳을 잃고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나혜석은 죽고 나서 그것도 한참이 지나서야 자화상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자화상은 지금 수원시립미술관의 독립된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자화상 속 나혜석의 눈빛은 여전히 우울하다. 그와 시선을 마주치면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과 행려병자 나혜석의 간극…. 며칠 뒤면 12월 10일이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수원 나혜석 생가터#나혜석#나혜석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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