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너무 거친 檢 적폐수사, 또 다른 적폐 불씨 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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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반년째 되는 날이다. 지난 6개월간 현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불법과 비리를 캐내는 데 골몰한 것이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 ‘국정과제 1호’ 적폐청산을 거듭 강조한 탓이 크다. 과거 잘못을 바로잡는 차원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무리도 많았다. 검찰로 넘어온 적폐청산 수사 와중에 중견검사와 변호사가 자살하는 비극까지 벌어졌다.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는 박근혜 정부 때 국가정보원 법률보좌관으로 파견됐다. 2013년 당시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6일 목숨을 끊었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과거 정부의 캐비닛을 뒤져 ‘하명(下命)’하듯 사건을 보냈다. 서울중앙지검이 맡고 있는 16건 가운데 13건이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사건이다. 청와대도 이런 방식으로 세월호 상황보고서 재수사를 하명했다. 적폐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검사 40%를 투입했다.

국정원이 검찰의 댓글 수사를 방해한 것은 연루된 관련자 전원이 구속된 것만 봐도 중대 범죄다. 하지만 수사 대상을 지나치게 폭넓게 선정했다. 수사 주체 역시 댓글 수사팀과 특검팀 출신들로 보복이란 오해를 살 여지가 충분했다. 변 검사가 숨지기 전 어린 자식들이 보는 가운데 자택을 압수수색해 수모를 안겼다. 수사 방식이 거칠다 보니 “윤석열 검사장 한풀이를 하느냐”는 원성이 높다. 오죽하면 문무일 검찰총장이 어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국정원 관련 수사 시 인권을 보장하고 신속한 수사를 하라고 지시했겠는가. 지금부터라도 검찰은 외과 수술을 하듯 수사에 절제의 미학을 발휘해야 한다.

전방위적인 적폐청산 작업에 따라 이제 다른 부처들도 줄줄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다. 언제까지 과거에만 매몰돼 있을 건가. 문 대통령부터 적폐청산 작업의 출구를 모색하길 바란다. 칼로 다스리지 않고 제도나 시스템 개선으로 정리해도 되는 사안들도 있다. 최고책임자나 죄질이 무거운 사람만 처벌해도 적폐청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검찰은 적폐 수사를 하다가 또 다른 적폐의 불씨를 키우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 적폐 수사에서 검찰이 수사의 공정함과 정치 중립성을 의심받으면 위상 추락 정도가 아니라 최고 수사기관으로서의 존립이 위태롭게 될 것이다. 국민이 독립과 정치 중립성을 불신하는 검찰이라면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기소만 하도록 권한을 축소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문무일 검찰’이냐 ‘윤석열 검찰’이냐는 소리까지 들리는 작금의 상황은 검찰로선 절체절명의 위기다.
#문재인#적폐청산#변창훈#국정원#댓글 수사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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