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형주]‘만사 인공지능’의 과유불급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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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열렸다고 언어-수학 과정 줄이는 건 지나친 발상
수학 문제를 장시간 풀게 하고 생각의 훈련과 연습은 늘려야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설마 와전된 거겠지. 언어와 수학은 인공지능이 잘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니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말자는 기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난데없이 인공지능과의 경쟁 우위가 모든 것의 잣대가 돼버릴 리가. 만사를 경쟁의 문제로 보는 걸까.

1997년에 딥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겼고, 올해는 알파고가 바둑의 이세돌을 이겼다. 이제 체스와 바둑은 인공지능에 경쟁력이 없으니 앞으로 인간은 하지 말자는 건가. 달리기는 자동차가 더 잘하니 인간은 달리지도 말고, 웬만한 스포츠는 다 없어져야 할 판이다. 숨쉬기는 인간이 기계보다 잘해야 할 텐데.

인공지능이 동시통역을 잘하겠지만, 외국어 구사 능력은 아이가 접할 수 있는 세계를 확장시켜 주지 않나. 추상적 사유를 요하는 고등수학조차 인공지능이 잘하게 된다 해도, 기초 자료를 모으고 합리적 추론의 과정을 거쳐 결론에 다다르는 능력은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위해 여전히 중요하다. 이건 천부적인 게 아니라 연습을 통해서 얻어 나가는 능력이다. 이런 연습과 훈련을 받지 못하면 합리적 추정과 궤변을 구별하지 못한다. 사실과 선동을 혼동한다. 통계적 대세와 블랙 스완의 차이도 잘 모른다. 창의와 임기응변을 동류로 여긴다.

직업의 탄생소멸이 빈번해지는 시대라는데, 새 업무에 적응하고 학습하는 능력은 이젠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지식’이 아니라 ‘학습 능력’이 미래 사회의 경쟁력이라는 것 아닌가. ‘멍 때리기’가 창의성에 유익하다는 주장이, 맹렬한 지식 습득과 경쟁 위주의 교육제도에 대한 까칠한 문제 제기를 넘어서 진짜 아무것도 안 하자는 거라면, 가뭄에 기우제 지내는 격이다. ‘생각 연습’의 과정이어야 할 수학 교육은 현행 교육과정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기술’로 변질됐다. 이런 기술이 복잡다단한 세상 문제의 해결 능력과 유관한가? 지금의 반복적 문제풀이 방식의 수학 교육에서는 작은 실수도 치명적이고, 아이들은 수학 문제 보는 게 공포 그 자체다.

요새 유행하는 먹방의 스타 셰프는 간단한 재료를 가지고 성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특별한 수고 없이 지켜보는 구경꾼은 생각한다. ‘명장은 장비 탓을 안 하지. 이순신 장군은 열세 척의 배를 가지고도 승전을 이끌었잖아.’ 이래서 천재 곁에 가면 피곤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대개는 좋은 재료가 좋은 음식을 만드니까.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인 ‘은하영웅전설’에서 양웬리 장군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멍청이는 보급 없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이지.” 양웬리의 멍청이는, 지휘관의 천재적 전략과 병사들의 불굴의 의지에다 요행까지 더해지면 보급 같은 거 없이 전장에서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재료로 최고의 음식을 만드는 거야 누가 못하냐고. 악조건에서의 승리가 진짜라고. ‘헝그리’ 정신을 외친다.

예상을 뛰어넘는 감동적인 승리도 가끔 일어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요행을 기대하고 계획을 짜는 자가 멍청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신기막측 전략으로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낸 이순신은 영웅이지만, 준비 없이 그를 절박한 처지로 내몬 선조는 무능하다. 예외적 상황은 그저 예외일 뿐이고, 그 가능성에 기대서 계획을 세우는 건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하물며 아이들의 미래를 가지고 긴 호흡으로 계획을 짜는 교육에서야. 교육과정의 생각 연습은 아이의 미래를 위한 ‘보급’이다. 양웬리의 보급 말이다.

조악한 식재료로 입이 떡 벌어지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천재 요리사도 있고, 충분치 않은 교과과정으로 벽을 넘어가는 재능 있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도 소중한 자산이다. 영재교육이 그래서 중요한 거 아닌가. 그렇다고 이걸 일반화해서, 아이들이 싫어하니까 또는 인공지능이 더 잘하니까 교과과정을 일단 줄이고 보자니.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한 도박과 다를 게 없다.

적은 수의 수학 문제를 긴 시간 동안 궁리하며 풀게 해주자. 아이는 그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해 내는 능력을 얻어 나가고 생각은 깊어진다. 아이가 미래 일자리에서 부닥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도 닮았다. 지식전수형 교육은 그 수명을 다했다. 그러니까 지금이 교육과정에서 생각의 재료와 생각의 훈련을 늘려야 할 적기가 아닌가.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인공지능#알파고#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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