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여행’은 가까운 곳에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휴가가 더 바쁠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하던 일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휴가여행 계획이 틀어진다. 그럴 때면 기분부터 상한다. 설렘까지는 아니어도 날짜를 세며 기다리던 여행이 아닌가. “차라리 에어컨 쌩쌩 돌아가는 회사에 있는 게 낫겠다”는 넋두리가 나온다.

잠을 자야 뇌가 쉴 수 있듯이 심신도 휴식을 취해야 1년을 탈 없이 지낼 수 있다. 그래서 모처럼 맞는 휴가는 축복일 뿐 아니라 꼭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휴가를 재충전의 시간이라 부르는 게 빈말이 아니다. 휴가를 망치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다.

지난주에 그런 휴가를 보냈다. 갑자기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버렸다. 내 자식의 일이니 누구한테 맡길 수도 없었다. 주민센터와 구청으로 뛰어다녔고, 서류를 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나도 모르게 “이게 무슨 휴가야”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금요일 오후에 간신히 일을 마무리했다. 그제야 뒤늦게라도 휴가 분위기를 내보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서해안으로 결정했다. 해수욕장까지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적었다. 더위를 걱정했지만 구름이 살짝 낀 데다 바닷바람까지 불어 의외로 선선했다. 일몰이 예쁘기로 소문난 바닷가로 자리를 옮겼다. 조개구이와 회를 파는 식당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중 한 식당으로 무작정 들어가 조개구이를 시켰다.

주인아주머니는 네 가족이 먹고 남을 만큼 넉넉히 조개를 내어줬다. 물을 찍찍 뿜는 조개를 불판에 올려놓자 쩍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아들 녀석이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밤이 되자 바로 코앞에서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야 서울로 돌아왔다. 하루짜리 유쾌한 휴가였다.

다음 날 방송에서 인천공항 출국장의 풍경을 봤다.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언젠가 우리 가족도 저들처럼 긴 줄을 선 끝에 출국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휴가를 어디에서 보낼 것이냐는 각자가 결정할 일이다. 이국적인 추억을 만들려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국내 여행에 장점이 많다는 점은 꼭 강조하고 싶다. 경비가 적게 들고,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수월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내 여행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국내 경기를 살리는 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931만 명이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이들 중 10%만 국내에서 여행을 즐겼다면 4조2000억 원의 내수가 창출되고 5만4000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세계관광협회(WTTC)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한 비율은 5.1%로, 세계 평균인 9.8%보다 낮다. WTTC 분석에 따르면 관광업의 고용창출 효과는 금융업의 1.5배, 화학제조업의 3배 정도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정부 기관은 물론 기업들도 국내로 여행 가기에 동참하고 있다. 이제 여름휴가 시즌이 절정기로 치닫고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여행지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주변을 돌아보면 ‘힐링’할 수 있는 여행지가 수도 없이 많다.

아 참. 국내 여행의 또 다른 장점 하나. 넉넉한 인심은 덤이다. 바닷가 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구워내기가 무섭게 먹어치우는 내 아이들을 보더니 신선한 조개로 빈 접시를 다시 채워줬다. 굳이 휴가가 아니더라도 조만간 또 그 식당을 찾아야겠다.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먹었던 조개구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corekim@donga.com
#휴가여행#해수욕장#인천공항 출국장#해외여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