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한]케미포비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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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정책사회부차장·의사
이진한 정책사회부차장·의사
얼마 전 어머니가 집에서 늘 쓰시던 욕실 청소 세제 ‘옥시싹싹’ 대신 베이킹 소다를 사용해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걸 봤다. 이유를 물어보니까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혹시나 손자 손녀의 건강에 안 좋을까 봐 생활화학제품 대신 천연제품으로 바꿨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아이 엄마가 그릇을 씻을 때 퐁퐁 대신 천연 계면활성제 성분이 들어간 쌀뜨물을 이용하거나 프라이팬의 기름때를 제거할 때 밀가루를 수세미에 묻혀 사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됐다. 우리 집만 유별난 줄 알았는데 둘러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생활화학제품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향제, 향수, 세정제 등을 말한다. 요즘 이런 제품들의 신뢰도가 끝도 없이 추락해 바닥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그 시초였고 연이어 방향제 스프레이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검출됐다. 그뿐이랴. 최근엔 얼음정수기 필터(코웨이사)에서 중금속 니켈 성분까지 검출됐고 심지어 공기청정기, 가정용 에어컨, 차량용 에어컨에 사용되는 필터(3M 제조)에서 유해물질(옥틸이소티아졸론·OIT)이 검출됐다. 소비자들은 마시고 숨 쉬는 것은 물론 일상의 전부에 퍼져 있는 화학제품의 독성 공격에 어쩔 줄을 모르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케미포비아(화학제품 공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조금 유난스럽다는 평을 듣긴 하지만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케미포비아는 그동안 무분별하게 사용했던 생활화학제품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외면 현상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말이 됐다. 실제로 신뢰도가 급락한 생활화학제품 중 표백제나 방향제 탈취제 등 대부분의 제품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매출액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제품의 유해성과 관련해 정부나 업계 측 전문가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제품 속에 들어 있는 성분들은 인체에 위해를 가할 정도의 양이 아니며 사용법만 잘 따르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써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설명에는 의사 출신인 필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그렇다면 해법은 하나다. 철저히 소비자 입장에서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당국자나 업체 측은 주부들에게 한번 물어보시라. 남편과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엄마이자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주부들은 수많은 생활화학제품에 포함돼 있는 첨가제 성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원한다.

가령 전(全) 성분이 표시된 화장품과는 달리 치약과 주방세제 등 생활화학제품엔 전체 성분 표시가 제대로 안 돼 있다. 그나마 성분 표시가 돼 있으면 뭐 하나,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크기로 읽기조차 어려운 이름만 나열돼 도대체 독성 위험이 있는 성분이 무엇이고, 얼마나 함유돼 있고, 적정 사용량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캐나다와 일부 유럽 국가는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들의 성분 함량과 위험도에 따라서 다양한 경고 표시를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안이 온 사람들을 위해 성분 표시의 글씨가 좀 컸으면 좋겠다.

정부 조직도 문제다. 미국에선 환경보건연구소를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에 두어 생활화학제품의 인체 유해성 여부 및 역학 조사가 통합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우리는 공산품(세탁세제 탈취제 방향제 등) 품질과 규격 관리는 산업통상자원부, 일부 공산품 유해 화학성분 조사 및 관리는 환경부, 공산품에 포함된 유해 성분으로 인해 인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 역학조사는 질병관리본부, 의약외품인 가습기 살균제 허가와 화장품 성분 관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으로 복잡하게 나뉘어 있다. 각 부처에 흩어진 생활화학제품의 허가, 검사, 관리, 역학 등의 업무를 하나로 묶는 컨트롤타워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이진한 정책사회부차장·의사 likeday@donga.com
#생활화학제품#케미포비아#화학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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