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식혜와 식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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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하얀 잣알 몇 개를 동동 띄운 차가운 식혜 한 사발. 생각만 해도 더위를 날려 보낼 만한 여름 별미다. 한데 혀끝에 감기는 시원한 감칠맛과는 달리 식혜는 남북한의 언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음료 ‘식혜(食醯)’와 음식 ‘식해(食해)’를 구별해 쓴다. 사전은 식해를 ‘생선젓’과 비슷한 말로 보고 ‘생선에 약간의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식품’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와 달리 북한은 둘 다 ‘식혜’라고 한다. ‘생선을 토막 쳐서 얼간했다가 채친 무와 함께 밥을 섞어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해 버무려서 삭힌 반찬’이 식혜라는 것. 그러니 시인 백석이 유난히 좋아했다는 함경도의 향토음식인 가자미식해를 두고 남한은 ‘가자미식해’, 북한은 ‘가재미식혜’라 한다. 새콤새콤하면서 쫀득쫀득 씹히는, 똑같은 음식인데도 말이다.

조선말대사전에 ‘식혜 먹은 괴(고양이)상’이라는 표현이 있다. 식혜를 먹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고양이의 얼굴이라는 뜻인데, 뭔가 이상하다. 달짝지근한 식혜를 마시고 얼굴을 찌푸리다니. 이때의 식혜는 아무래도 매콤새콤하고 비릿한 냄새가 들어있는 식해일 성싶다.

발음이 비슷해선지 식혜와 식해를 헷갈려 하는 이도 많다. 한자어에서 보듯 둘 다 밥이 들어가고 숙성시켜 만든 음식이란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내용물에 따라 그 맛은 달라진다.

경북 안동 지방에서는 식혜에다 무 배 생강 마늘 밤 등을 썰어 넣고 고춧가루도 넣어 얼큰하고 시원하게 만들어 먹는다. 경주에서는 멥쌀로 만든 것은 ‘단술’, 찹쌀로 만든 것은 ‘점주’라고 해 안동의 식혜와는 차이가 있다. 식해 역시 함경도 도루묵식해, 강원도 북어식해, 경상도 마른고기식해 등 지방에 따라 다양하다.

납작한 몸에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 있는 ‘가자미’ 역시 남북한 말법의 차이를 보여준다. 북한은 ‘가재미’라고도 한다. ‘이(l)모음 역행동화’ 때문이다. 이는 뒷소리에 있는 ‘이(l)모음’이 앞소리에 영향을 미쳐 앞소리가 뒷소리와 비슷해지거나 같아지는 현상. 아기가 애기로, 아비가 애비로 소리 나는 게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이(l)모음 역행동화’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기, 아비, 가자미만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북한은 애기, 애비, 가재미도 인정하고 있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식혜#식해#가자미#가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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