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형주]일자리 나비효과, 교육이 변해야 할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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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붕괴로 일자리 놓친 미국의 유능한 수학자, 실리콘밸리에 입성 후 맹활약
나비효과로 일자리 태풍 맞는 시대의 교육 핵심은 새 영역 찾아 전문성 터득하는 것
지금의 지식전수형 반복학습은 생존능력 키울 가망 없어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전공을 바꾸어 대학원에 입학해서 보니 재능 있는 학생이 많았다. ‘재능은 공평하지 않구나. 시간을 더 써서 보충할 수밖에.’ 같이 고생하던 미국 학생과 가까워져서 함께 공부한 덕에 웬만큼 따라가게 됐다. 그런데 동병상련의 처지인 줄 알았던 그가 주목받는 논문을 내더니, 최고의 영예인 슬론(Sloan) 논문 펠로로 선정되는 게 아닌가. 등잔 밑은 항상 어둡다. 동료들의 부러움을 받는 자타 공인의 천재와 친구가 된 걸 위안으로 삼았다.

그는 내가 병역을 위해 귀국했던 기간에 졸업했는데, 오랜만에 근황을 들으니 실리콘밸리에서 일한다고 한다. 위상수학 분야의 대가가 될 거라고 기대하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나비효과라고 한다.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이랴 싶은 세상의 작은 변화는 종종 강력한 힘으로 개인의 일상을 바꾼다. 수학자들은 이를 체계화해서 혼돈이론(Chaos Theory)을 만들었다.

1990년대 초중반은 옛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정권이 무너지던 국제정치의 혼돈기였다. 냉전 체제가 붕괴되면서 동구 과학자들의 대탈출이 일어났다. 세계적 명성의 과학자들도 불안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의 전망 속에서 속속 서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에서 신규 박사들의 첫 일자리이던 연구원 자리도 씨가 말랐다. 일자리 혼란은 이론 분야에서 더 심했다. 실험장비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는 새로운 연구 환경을 구축하려면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 탓에 아무래도 이동성이 제한된다.

하필 격변의 시기에 졸업한 젊은 박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운을 탓해야 하나. 베이비부머의 대량 은퇴가 멀지 않아서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 했는데, 당연시되던 일자리조차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다니. 갈 곳을 잃은 젊은 이론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 일부는 월스트리트로 진출했다. 고맙게도 그들을 받아준 월가에서 정량적 투자 기법을 도입하는 선구자가 됐다. 정량분석가를 뜻하는 ‘퀀트’라는 새 직종이 출현했다. 파생상품 등의 새 금융상품 설계의 주역이었지만 금융위기의 주범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총명한 젊은 수학자였던 내 친구는 이런 혼돈의 와중에 길을 잃은 것이다. 옛 소련에서 몇 사람의 희망이던 자유화라는 나비의 날갯짓은 페레스트로이카로 번지더니 태풍이 되어 미국의 젊은 수학자의 일자리를 앗아갔고, 그의 인생을 전혀 다르게 변모시켰다. 이제는 빅데이터에서 위상수학이 중요한 도구로 등장하면서 최고의 전문가가 됐으니 새옹지마가 이런 걸까.

1980년대 말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금융위기로까지 연결하는 이런 나비효과 접근은 세상의 복잡다단한 일들이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 예측의 범주를 넘는 거대 변화는 사회나 개인에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변화된 새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가가 관건이 된다. 월가의 퀀트와 실리콘밸리의 수학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 영역을 만들었다.

지식전수형 교육은 학생들을 예측 가능한 범주에서만 기능하게 하고, 예측을 넘는 나비효과의 영역에서는 무장 해제시킨다. 영화 ‘마션’에서는 화성에 고립된 주인공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물과 식량을 조달하고 지구와 통신할 방법을 찾는 과정이 묘사된다. 생각의 힘을 키우는 교육은 이런 창의성과 생존 능력을 주요 목표로 한다.

지금 초등학생의 반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질 거라고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는 말한다. 새로운 지식이 필요할 때 이를 습득하는 능력이 부각되는 이유다. 직장에서 자신의 부서나 담당 업무가 내일 없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영역에서 전문성을 터득해내는 능력이 미래 교육의 핵심이다.

옛 소련의 개방이 만들어낸 일자리 태풍은 국지적이고 제한적인 채로 지나갔지만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여파는 다를 것이다. 연기처럼 없어질 일자리와 새로 생길 일자리의 종류와 수치에 대한 구체적인 추산까지 나돈다.

알파고라는 나비의 날갯짓이 일자리의 태풍을 일으킬 거라는 건 분명하다. 당장에 의사나 택시 운전사 상당수가 인공지능 기반의 무인 진단기나 무인 택시로 대체될 거라고 한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예측 가능의 영역이 아닐지라도, 우리 아이들이 지식전수형 반복학습으로 이 파고를 넘을 수 없다는 건 예측 가능하다.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실리콘밸리#나비효과#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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