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의 오늘과 내일]반기문의 당선 가능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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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정치부장
정용관 정치부장
2002년 대선을 1년여 앞둔 어느 날. 개신교계 원로인 강원용 목사(2006년 별세)가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을 만났다. 강 목사가 “대선후보로 누구를 생각하느냐”며 넌지시 고건 전 총리 얘기를 꺼내자 DJ는 “그 사람은 안 돼요. 호남 출신이잖아요”라고 단박에 잘랐다고 한다.

DJ의 비토(?)를 당한 고 전 총리가 다시 유력한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건 알려진 대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 계기가 됐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보여준 안정적 리더십에 따른 ‘고건 현상’은 2년 이상 지속됐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출마를 포기했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은 ‘당선 가능성’이었다. DJ가 내다본 호남 후보 한계론은 2007년 대선에서도 유효했다. 결정적 한 방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이었다. 지금은 핵실험이 4차까지 이어져 둔감해진 부분이 있지만 당시의 충격은 엄청났다.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견지해 온 진보정권의 연장은 불가능해 보였다. 고 전 총리는 진보정권의 틀을 넘어 합리적 보수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지평’을 모색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떨어지더라도 출마한다? 평생 대권욕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모를까, 고 전 총리로선 합리적 선택이 아니었다.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당을 다시 추스르고 다음 대선을 준비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2012년이면 만 74세가 되는 나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화려한’ 5박 6일 고국 방문 행보를 놓고 대선 출마 의지를 굳혔다는 해석이 많다. 그의 대선 출마는 상수(常數)로 봐야 한다는 거다.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세간의 관심은 “반 총장은 과연 대선에 출마할까”에 꽂혀 있지만 반 총장의 관심은 여전히 “과연 당선될까”에 쏠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잃을 게 많으면 생각이 복잡한 법이다.

반 총장의 5박 6일은 대선주자로서의 당선 가능성을 정밀 탐색하는 ‘간보기’ 시간이었다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마음껏 정치 행보를 해놓고는 출국 기자회견에서 언론의 과장 보도 운운하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제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한다.

반 총장이 고 전 총리처럼 중도 하차할지, 끝까지 갈지를 지금 시점에서 말하는 건 무의미하다. 다만 분명하게 짚을 수 있는 건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다. 고 전 총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계와 달리 반 총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는 ‘현재까지는’ 순항 중이다. 반 총장의 갑작스러운 일정 추가에 청와대는 헬기를 내줬고, 반 총장은 유엔 NGO 콘퍼런스에서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반 총장이 잠재적 여권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보수정권 재창출 기대 심리로 레임덕 방지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는 늘 양날의 칼이다. 반 총장도 대선 출마를 결심하더라도 박 대통령, 혹은 박 대통령을 추종하는 세력에 얹혀 여당 대선후보가 되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어 금의환향하겠다는 게 그의 1차 목표인 것 같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반 총장의 당선 가능성은 정치공학적 지역 연대가 아니라 ‘대통령감’으로서의 자체 발광 여부에 더 달려 있다. 충북 음성에서 한약방을 하는 할아버지 집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권유를 뿌리치고 평생 외교관의 길을 걸어 최고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런 성공신화 자체가 희망인 시대는 끝났다. 7개월 후 그는 ‘우아한 외교’가 아닌 ‘치열한 생존’에 대한 답을 갖고 올 것인가.

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고건#반기문#대선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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