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미현]관료들은 人道 위 돌기둥에 부딪쳐 본 적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불법주차 막기 위해… 人道에 세운 돌기둥 탓에
애꿎은 보행자 피해만 늘어… 행정편의 위한 일괄규제
‘인도 위 돌기둥’에 불만… 관용車타는 관료들은 모를 것
꼭 불가피한 규제라면, 반칙행위 자체만 규제하라

이미현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미현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도(人道)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건물 앞에 주차공간이 따로 구획돼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인도에 주차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얌체 같은 운전자들이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나가기 좋게 낮춰 놓은 인도의 턱을 타고 올라와 주차하는 일이 잦아 언제부턴가 인도를 낮추어 놓은 곳에는 차량 진입을 막는 돌기둥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보행자들이 인도를 걸을 때면 이런 돌기둥 사이로 조심스럽게 지나다녀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었다.

이런 돌기둥은 대체로 높이가 낮아 방심하고 걷다가는 부딪치기 일쑤다. 대낮에 돌기둥에 부딪친 사람들은 눈물나게 아파도 두 눈 멀쩡히 뜨고 부딪친 것이 창피해서 그저 그 자리를 벗어나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나마 낮에는 비교적 경미한 충돌이 대부분이지만 돌기둥이 잘 안 보이는 야간에는 비틀거리며 걷던 취객들이 넘어지다 돌기둥에 얼굴을 박는 등 보행자가 중상을 입는 경우도 꽤 있다.

인도 위의 불법주차는 당연히 막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꼭 돌기둥을 세워 두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 불법주차하는 즉시 견인되는 일이 일상화되면 돌기둥이 없더라도 인도 위 불법주차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단속을 하는 입장에서는 물론 돌기둥을 세워 차량의 인도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이 보다 효과적이고 손쉬울 것이다. 하지만 애꿎은 보행자들의 피해를 고려하면 돌기둥을 세워놓고 불법주차와는 무관한 보행자들에게 전방 주시 의무를 부과할 것이 아니라, 다소 품이 더 들더라도 반칙을 한 얌체 운전자들을 직접 단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실 인도 위의 돌기둥은 우리 사회가 각종 반칙행위를 규제하는 방식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어떤 유형의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유형의 행위를 아예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식의 규정들이 법규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우량한 기업에만 자산 유동화를 허용하는 자산유동화법이 대표적인 예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우량자산을 유동화하면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산 유동화는 신용등급이 낮지만 우량자산을 보유한 기업에 오히려 더 필요한 첨단 금융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격 제한을 하는 이유는 이 법에 규정된 저당권 이전에 관한 특례조항의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러한 자격 제한 규정이 자산의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자산 유동화에 적용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중소기업들이 저당권과는 무관한 자산으로 자산 유동화를 할 수 있는 길조차 막혀 버렸다.

공익법인에 대한 기부는 증여세 대상이 아님에도 특정 기업의 발행 주식 5% 이상을 공익법인에 기부하면 그 초과분에 대하여는 증여세를 부과하는 상속증여세법의 규정도 마찬가지다. 이 규정은 기업들이 공익법인을 통해 계열사 주식을 편법적으로 보유함으로써 계열사를 우회 지배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선의의 기부자들에게 증여세 폭탄을 마구 투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 위 돌기둥 수준의 규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계열사 우회 지배 문제는 그런 공익법인을 둔 기업에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 반칙행위 자체를 직접 규율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규제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므로 그로 인해 자유가 제약된 사람은 불편하게 여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건전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규제라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함께 지키는 것만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누군가가 불편하게 여긴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규제를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된다.

현재 규제 완화가 요구되는 사안들을 살펴보면 행정 편의적인 규제 방식으로 인해 편법행위와는 무관함에도 얼떨결에 규제 대상으로 함께 묶여 버린 사람들의 불만 때문인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경우라면 반칙행위 자체에 직접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규제의 틀을 바꾸기만 해도 편법행위가 판을 치는 부작용 없이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규제 완화 요구에 대하여 입법 목적의 정당성만을 내세우며 규제 존치를 합리화할 일이 아니다. 규제 대상의 구체적인 범위, 규제 방법의 적절성 및 다른 방법에 의한 대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미현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규제#규제 완화#자산유동화법#불법주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