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너무도 많은 태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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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정치부 차장
김영식 정치부 차장
역사는 발전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전체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아닌 듯해 보이기도 한다. 불행히도 현 시점은 발전에 역행하는 구간에 들어서 있는 듯하다.

국제사회의 움직임에서 이런 부정적인 기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국제질서를 이끌던 미국에선 막말 챔피언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공화당 유권자들은 국경에 높은 펜스를 치고,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던 그를 선택했다. 트럼프의 인기는 미국이 세계경찰로 국제질서를 유지하기보다는 고립주의로 회귀하겠다는 움직임의 예고편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으로 성공적인 통합을 이끌었다던 유럽에서는 영국의 이탈 움직임, 독재와 탄압을 피해 나선 아프리카와 중동 난민의 입국 금지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시아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극우화 바람이 거세고 중국의 세력 확장 움직임이 어디에서 충돌로 이어질지 모르는 위태한 형세가 이어지고 있다. 통합, 협력, 민주적 가치의 확산이라는 기존 질서의 받침돌들이 바닥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어디에도 쉬운 곳은 없어 보인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든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종식을 거치면서 형성된 기존 질서와는 다른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인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조차 힘든 변혁기의 국제질서를 더욱 세차게 흔드는 것이 바로 북한의 행보다.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역사 발전에 도전하고 있다. 6일 열리는 북한 노동당 7차 대회가 주목되는 이유도 바로 당 대회 행사의 성공과 도발을 연결시키려는 북한의 행보 때문이다.

역사의 유물처럼 보이던 노동당 대회 개최 카드를 북한이 다시 꺼낸 본질은 과거로의 회귀로 볼 수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북한을 통치하던 시절의 권위와 기억을 현재로 끌어내려는 노력인 셈이다. 아마도 북한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 바로 남쪽보다 경제적으로도 앞섰다고 평가받던 1970년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6차 당 대회가 열렸던 1980년 10월 10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이후 혼란이 지속되던 한국과 달리 북한의 전성기였다. 군사적으로 한국보다 앞섰고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권 형제국가들은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던 시절이다.

모두가 악몽처럼 여기는 냉전 시절이 북한에는 ‘춘삼월 호시절(春三月 好時節)’이었던 셈이다. 달라진 것은 북한의 위상이다. 6차 당 대회 시절엔 사회주의권에선 비교적 성공적인 모델로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실패의 상징이다. 그런 격차를 군사적으로 메우려는 시도가 바로 핵개발인 셈이다. 하지만 자본을 소진하고 국제사회와 단절로 이어지는 핵과 미사일 도발이 주민을 먹여 살릴 수는 없다. 문제는 북한이 뜻대로 안 된다고 좌절할 때 찾는 출구가 대남 도발이고, 그게 한반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러니 정부가 한-이란 정상회담의 ‘성과목록 나열’에만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대홍수에 이어 가뭄으로 북한의 농토가 타들어갈 때 탈북자들은 유머러스한 설명을 내놓았다. 하늘에 태양이 있는데, 두 개의 태양(김일성과 김정일)까지 더 있어서 가뭄이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번 노동당 7차 대회를 계기로 우상화 작업에 나서면서 김정은을 ‘21세기의 태양’이라고 치켜세웠다. 어쩌나, 과거의 영광에 기대려는 태양이 하나 더 늘어났으니 올해 한반도의 여름은 얼마나 무덥고 힘겨울까.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북한#노동당대회#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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