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태훈]소통의 향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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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정치부 차장
황태훈 정치부 차장
고참 선배의 ‘눈물’을 보았다. 지난해 11월 22일, TV를 보던 중이었다. 한 빈소에 몸이 성치 않은 이가 부축을 받으며 들어섰다. 영정 앞에 털썩 주저앉더니 서럽게 곡을 했다. “아이고, 아이고….” 선배는 잠시 안경을 벗더니 고개를 숙였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1927∼2015)이 별세한 날이었다. 그의 ‘오른팔’ 격이었던 최형우 전 내무장관이 흐느끼는 모습이 나올 때였다. 그 선배의 눈물은 YS를 밀착 취재하던 추억이 필름처럼 스쳤기 때문인지 모른다.

필자도 YS와의 첫 만남의 기억이 생생하다. 1988년 대학 학보사 기자 시절, 신문 제작을 위해 서울 중구 중림시장 부근을 지나던 길이었다. 검은색 승용차에서 백발 신사가 차량 문을 열고 나왔다.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YS였다. 당사를 나서다 시장 상인들과 인사를 한 거였다. 곁에 있던 기자도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그의 손에선 생선 비린내가 났다. 상인들과 접촉한 잔향(殘香)이었다. 정치 지도자로 서민과의 솔직한 스킨십(애정 표현)이 느껴졌다.

YS는 1993년 대통령이 된 뒤에도 국민과 눈높이를 맞췄다.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의무화했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해 지하경제를 투명화했다. 1995년엔 5, 6공화국의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겠다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 장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서민을 생각하는 마음은 YS 못지않다.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월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복주택, 뉴스테이 등 다양한 임대형 주택을 고안했다고 소개했다. “민생을 살리겠다”는 말도 자주 했다.

그럼에도 2% 아쉬웠다. 2013년 취임 이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소통 부족’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무회의에서 국회의 비협조를 지적했다.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를 ‘배신의 정치’로 몰아붙였다. 상대와 마주 보지 않은 채 변방을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이날 “여야 3당 대표와의 만남을 정례화하겠다”고 밝히면서도 4·13총선에서 여당의 참패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항변했다. 탈당한 일부 의원을 향해선 “허탈하다” “한(恨)스럽다”고도 했다. 대통령과 뜻을 달리한 것에 대한 배신감이 여전한 듯했다.

박 대통령은 임기 4년 차인데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3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 10~20%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높은 지지율이다. 다만 역으로 70%에 가까운 민심은 박 대통령을 불만스럽게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O Captain! My Captain!)”,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년)의 명대사다. 학생들은 교실을 떠나는 키팅 선생(고 로빈 윌리엄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선장(선생)은 선원(학생)에게 “주입식 교과서를 찢어라”라며 열린 사고를 요구했다. 책상 위에 올라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도 했다. 그런 선장과 선원들은 하나가 됐다.

선장, 리더란 이런 것 아닐까. 국민의 마음을 울리는 것. 그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 말이다. 박 대통령은 이란 순방에서 흰색 ‘루사리’(페르시아어로 ‘머리에 쓰는 두건’)를 둘렀다.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며 ‘코이란(코리아+이란)’ 경제 외교의 성과를 일궜다. 이제는 4일 귀국해 루사리를 벗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줄 차례다.

황태훈 정치부 차장 beetlez@donga.com
#김영삼#최형우#박근혜#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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