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유종]‘항공정비 허브’ 싱가포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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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국제부 기자
이유종 국제부 기자
한 대형 여객기가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 착륙해 승객, 화물을 모두 내린 뒤 인근 정비공장으로 이동했다. 여객기는 엔진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 성능 조사까지 마치는 ‘오버홀’ 작업을 받아야 한다. 비행시간 4500∼2만4000시간마다 받는 이 작업에는 최대 550만 달러(약 66억5500만 원)가 들어간다.

항공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로 고부가가치의 항공정비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경영컨설팅기업 올리버와이먼에 따르면 여객기 등 민간 항공기는 2025년까지 현재보다 1만 대 이상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 항공기의 정비시장 규모는 지난해 671억 달러(약 81조 원)에서 2025년 1004억 달러(약 121조 원)로 늘어난다.

싱가포르는 일찌감치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큰 항공 산업에 주목했다. 항공기 제조업은 선발 주자들과의 기술, 자본 격차가 너무 커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대신 미국과 독일 등 일부 국가들이 주도해온 항공정비 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내다봤다.

1981년 개항한 창이 국제공항은 지정학적 이점을 발판으로 1990년대 동남아시아의 허브공항으로 떠올랐다. 항공정비 수요도 늘었다. 물론 항공정비도 진입하기 쉬운 분야는 아니었다. 초창기 부족한 전문 기술, 브랜드 파워는 해외 기업들과 제휴를 맺어 극복했다. 싱가포르 공군은 군용기 정비를 민간에 위탁했다. 롤스로이스 등 유명 항공기 부품 전문기업을 유치했다.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이웃 동남아 국가에서 저렴한 노동력도 확보했다. 납기일 단축, 고객관리, 원스톱 정비 등 당시엔 찾아보기 어려운 고객중심 서비스도 제공했다.

이런 노력으로 싱가포르의 항공정비 산업은 1990년대부터 매년 1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현재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항공정비 산업의 10%를 차지할 정도다. 아시아태평양지역 항공정비 시장의 25%가 싱가포르 몫이다. 싱가포르의 항공정비 기업 STA는 업계 6위 기업으로 떠올랐다.

경제적 파급 효과는 컸다. 항공정비 분야 종사자만 2만여 명으로 늘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와 난양이공대는 항공 분야를 특화해 연구개발(R&D)에 나서고 있다. 셀레타르 공항 인근에는 항공산업 복합단지인 ‘셀렉타 에어로스페이스 파크’를 짓고 있다.

한국은 세계 8위의 항공운송 대국이다. 수백 대 전투기를 보유한 막강한 공군력을 바탕으로 초음속 고등훈련기를 제작할 정도로 기술력도 뛰어나다. 항공정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시장도 가까워 잠재력도 무한하다. 중국, 인도 등의 경제 성장에 힘입어 아시아 국가들의 항공기 보유 대수는 2025년까지 현재보다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의 항공정비 산업은 내수 중심으로 성장해서 그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조선, 철강 등 기존 주력 산업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방치했던 숨은 자산만 활용해도 성장의 길은 분명 있다.

이유종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항공정비#싱가포르#여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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