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미현]한국 사회에 필요한 적정 변호사 수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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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부족’과 ‘공급과잉’… 법률시장 보는 엇갈린 시각
변호사 1인당 인구, 선진국에 비해 많으나 법무사 등 인접 직역도 감안해야
법조 인구 공방에 앞서 변호사만 제공할 수 있는 법률서비스 한계부터 검토 필요

이미현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미현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의 등록 회원은 2만395명, 활동 중인 개업 변호사만 해도 1만7324명에 이른다(2015년 11월 30일 기준).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는 등록 회원이 8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30여 년 전 변호사 등록을 했던 필자의 등록번호가 3000번대였음을 고려하면 현재 법률시장은 공급 과잉이라는 변협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변호사 부족으로 양질의 법률 서비스가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국내 법률 서비스 산업의 매출 규모는 약 3조 원으로 국내총생산의 0.2% 정도다. 하지만 미국 영국 캐나다의 경우 법률 서비스 산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이른다. 변호사 1인당 인구 역시 미국 영국 독일은 약 300∼500명인 반면 우리나라는 2000명이 넘는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 법률 서비스 산업은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변호사가 부족하다는 후자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그러나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한 적정 변호사 수는 이런 통계 수치의 단순 비교만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는 제품과 달리 법률 서비스의 질은 전적으로 제공자의 전문지식 수준에 달려 있다. 높은 수준의 포괄적 법률지식은 장기간의 강도 높은 교육·훈련을 통해 축적되지만, 그 과정에서 지출될 수밖에 없는 많은 비용은 결국 법률 서비스 공급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공급자가 늘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시장경제 논리에 근거한 주장은 모든 법률 서비스는 균질하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부분적으로만 타당할 뿐이다.

수요자 입장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와 관련된 법률 서비스인가에 따라 원하는 서비스의 질적 수준은 다르므로, 법률 서비스 공급 가격이 항상 공급 총량에 반비례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처리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라면 몰라도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과 관련해 수요자가 우선 고려하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질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변호사가 우리보다 훨씬 많은데도 일류 법률사무소의 수임료는 오히려 더 비싼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과거 소수의 인원만이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주로 소송에 전념했고,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국민의 소소한 법률문제에 대해서는 법무사 변리사 관세사 세무사 공인노무사 행정사 등 소위 법조 인접 직역 전문가들이 필요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들의 수는 2014년 기준 10만 명이 넘는다. 반면 앞서 언급한 선진국들은 모든 법률 서비스는 변호사가 제공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따라서 인접 직역 전문가까지 포함시켜 실질적인 변호사 1인당 인구를 계산할 경우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인 422명에 이른다.

그렇다고 우리도 변호사 수를 늘려 모든 법률 서비스를 원칙적으로 변호사가 제공하게 하자는 것은 다소 성급한 결론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우리의 인접 직역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비교적 단순한 법률 서비스도 변호사들이 제공하는 대신 이에 대해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법무사를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부동산 등기를 할 수 있지만, 영국은 원래 변호사(solicitor)만이 이런 업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공되는 서비스 대비 높은 비용으로 인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1985년 공인이전사(licensed conveyancer) 제도를 도입해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도 부동산 거래가 가능하게 됐다. 법률 서비스 비용을 낮추려면, 비교적 단순한 법률 서비스에 대해서는 다소 제한적인 법률 지식만을 요구하는 것이 더 효율적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은 이상적이지만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사안별로 어느 한쪽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괄적인 법률지식을 구비한 변호사만이 제공할 수 있는 법률 서비스의 한계를 과연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검토이다. 적정 변호사 수에 대한 논의는 이런 검토 결과를 전제로 진행될 때 비로소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미현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공급과잉#법률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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