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장원재]탄광의 카나리아 재일교포 60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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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일본 법무성 입국관리국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올 1월 초까지 두 달 넘게 불법 체류 신고 메일 접수를 중단했다. 지난해 일본 넷우익(인터넷 우익) 사이에서 큰 화제였던 ‘7월 자이니치(재일교포) 추방 운동’ 때문이었다.

지난해 7월 9일부터 재일교포 신분증이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외국인등록증명서’에서 국가가 발행하는 ‘특별영주자증명서’로 바뀌었다. 이를 계기로 넷우익들은 지난해 초부터 ‘재일교포를 신고하면 최대 5만 엔(약 52만 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우익들은 증명서가 바뀌면 교포들이 통명(일본식 이름)을 쓸 수 없고, 군대에 안 간 사실도 드러날 것이라고 추정했다. 병역법 위반으로 한국 여권이 말소되고, 일본 특별영주권도 사라지면 불법 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신고하면 돈을 받고 이들을 내쫓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는 전제부터가 틀린 것이다. 증명서 변경과 재류(체류) 자격은 관련이 없고, 일본에서 자란 재일교포는 병역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월 500건 미만이던 신고는 지난해 5월 1821건, 6월 1562건으로 늘었다.

실제로 7월 9일이 되자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신고가 폭증했다. 하지만 이들이 바라던 ‘재일교포 추방’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심판의 날’ 이후의 사이비종교 신도들처럼 넷우익들은 음모론으로 빠져들었다. ‘추방설은 사실무근’이라는 정부 해명은 ‘한 번에 잡아들이려는 작전’으로 해석됐다.

시간이 더 지나도 재일교포가 추방되지 않자 음모론은 분노로 불타올랐다.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1만 건 이상의 ‘메일폭탄’이 접수돼 업무가 마비되자 정부가 신고 접수를 아예 중단해 버린 것이다. 입국관리국 당국자는 “아무리 설명해도 통하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량 메일을 보낸 이들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지 경찰에 상담할 정도였다.

이 문제는 재일교포들에게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사이버 공간의 ‘비난’이 오프라인 거리 시위를 넘어 ‘고발’이라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한 교포는 “간토 대지진(1923년) 당시 조선인 학살이 떠올랐다”고 했다.

넷우익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낳은 괴물이다. 경제대국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자신의 삶은 팍팍한데 식민지였던 한국과 중국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넷우익들. 이들이 키보드 앞에서 ‘모든 악의 원인은 자이니치’라는 음모론을 만들어냈다.

사이버 공간에 머물다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혐한 감정이 확산되자 거리로 뛰쳐나왔다. 일본 국민 3분의 2가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 상황에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피해자는 고스란히 재일교포와 한국 기업들이었다. 한류의 성지였던 신오쿠보는 차이나타운으로 변하고 한류 드라마가 자취를 감췄다. 삼성 휴대전화는 로고를 지워야 했다.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나오자 재일교포들은 모국(母國) 신문에 광고를 내며 환영했다. 연말연시 모임에선 ‘이제 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이 흘렀다. 그런데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찬물을 끼얹었다. 조선학교에는 학생을 보호하라는 경계령이 떨어졌고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본부 앞에서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한 재일교포는 “우익들은 남북을 구분하지 않는다. 혐한 감정이 다시 끓어오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한일 관계, 북-일 관계가 악화되면 이들이 제일 먼저 고통을 받는다. 재일교포 60만 명은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잊으면 안 된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재일교포#우익#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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