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상진]동북아 미래, 하버마스 진단을 듣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북한의 지뢰도발로 조성된 한반도 무력충돌의 위험은 가까스로 봉합되었다. 다행이다. 그러나 북한을 제압했다고 우쭐댈 일은 아니다. 중국은 결코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판단은 우리의 기대 밖에서 움직인다. 파국이 예외가 아니라 일상화하는 미래를 상정해야 한다.

특히 동북아 정세는 이미 폭풍의 언덕에 올라섰다. 근대의 상징인 국가주의 전통이 매우 강하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은 아시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일본은 자체 국방력을 갖춘 ‘정상국가’를 지향한다. 패권 갈등이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전대미문의 위험사회가 도래하여 생존경쟁의 압박이 심하다. 자연히 대중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불안에 휩싸인다. 바로 여기에 화약고가 있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집권층은 대중의 상실감을 민족감정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자 국가이익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2개국(G2) 중국이 군사대국의 면모를 과시하는 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이 9월 3일 열린다. 이 행사는 전례가 없는 급작스러운 것이다. 그만큼 정치색이 강하다. 서방이 외면하고 일본이 불참하는 중국발 세계(특히 아시아) 질서의 밴드왜건에 박근혜 대통령이 올라탄다. 위험을 무릅쓴 용기 있는 행동이다. 논란이 있고,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그 이후에 있다. 구질서는 어차피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은 혼돈이다. 한국과 한반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여기서 세계의 석학 하버마스 교수의 혜안을 소개하고 싶다. 그는 일찍이 1996년 4월 30일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에서 ‘민족통일과 국민주권’을 주제로 공개 강연한 적이 있다. 그랬던 그가 2013년 11월 23일 독일 남부 슈타른베르크 사저에서 4시간 이상 진행된 인터뷰에서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미래에 관해 흥미로운 진단과 처방을 내렸다(대화 전문은 ‘아시아문화’ 창간호 2014년 5월호에 게재).

그의 관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독일과 비교해서 한국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기는 어렵다. 현재의 남북관계,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 진단은 맞다.

둘째, 그래서 뛰어난 외교능력이 요구된다. 독일보다 더 탁월해야 한다. 사실 어려운 주문이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한국이 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북한을 다독거리고 중국과 미국, 일본을 오가며 한반도 통일의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가? 기대가 크지 않지만 지켜볼 일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진단은 동북아에서 국가주의를 넘는 발전의 원동력이 한국에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표현을 따르면, 한국은 전후에 ‘경제성장과 함께 역사에 대한 자기성찰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이다. 중국에는 비대한 정부와 성장하는 시장은 있지만 시민사회는 취약하다. 일본에서는 오직 자기 확신이 강한 우익만이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시민사회, 깨어 있는 시민이 한국의 잠재력이자 동북아의 미래다.

나는 이 진단을 들을 때 진정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갈등이 고조되는 동북아에서 한국이 소통과 협력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가?

하나의 길은 시민의 관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고정된 이분법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 대신 소통의 ‘상보성’ 원칙을 확립한다. 가해자도 사실은 피해자일 수 있다. 예컨대 일본이 저지른 전쟁은 한국, 중국의 민중에게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주었지만, 일본 시민에게도 사상 최초의 참혹한 원폭의 피해를 주었다는 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부축할 수 있다. 이것은 국가의 관점에 매여 있는 기억을 국가주의로부터 해방시켜 상보성의 관점에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부국강병,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동북아의 미래는 밝지 않다. 파국의 국면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소통의 눈으로 상대를 상대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포용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런 힘이 시민사회 안에서 성장할수록, 국가주의를 넘는 제2 근대의 지평이 열린다. 이런 발전의 잠재역량이 오직 한국에 있다는 하버마스의 진단은 고무적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깊게 생각해볼 질문이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