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희숙]노동시장 개혁, 깎아내리거나 부풀리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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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금 많은 대기업만 이득”
개혁 마뜩잖은 기득권 그룹, 깎아내리기 논리 근거 없어
“임금피크제땐 청년고용 급증”… 효과 부풀리기도 부적절
‘마라톤 개혁’ 성공하려면 그 의의와 한계, 병행조건 등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는 게 먼저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구조개혁이 왜 필요하냐고 누군가 굳이 묻는다면 ‘구조가 바뀌었으니까’가 답이다. 연 10% 성장을 거듭하던 고속성장 경제가 저성장과 고령화로 규정되기 시작한 지 수년이다. 그런데도 각 분야에서 관철되는 규칙과 관행은 예전 그대로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난다. 청년실업이 고공행진 중인 것은 앞으로도 한국 경제에 깊은 상흔을 남길 대표적 마찰음이다. 그 나이대에 배워야 할 것들을 적절한 장소에서 배우지 못한 젊은이들의 평생 소득경로가 순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진입로에서 기웃거리는 청년들로 인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구도로 논의가 전환된 것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강하다. 개혁을 마뜩잖게 여기는 기득권 그룹은 개혁 조치들을 근거 없이 깎아내리고, 이에 대응하려는 측에서는 개혁의 효과를 부풀리는 모습들이 묘한 대칭 구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거 없이 깎아내리거나 치켜세우는 것 모두 개혁 시도를 저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단기간에 끝날 과제가 아니니 괜히 부풀렸다 터지면 동력을 잃기 십상이고, 깎아내려지면서 호도되면 개혁을 시작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깎아내리는 대표적 논리는 노동시장 개혁이 대기업만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사내유보를 700여조 원이나 쌓으면서 투자도 고용도 하지 않는 대기업들인데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용을 낮춰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결국 대기업 행태에 대한 저변의 거부감을 자극해 개혁을 저지하는 것이다.

대기업 편을 들어줄 마음은 전혀 없으나 노동시장 개혁으로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어하는 이들이 사내유보에 대한 대중적 몰이해를 악용하는 것 또한 눈살이 찌푸려진다. 우선 사내유보란 기업 수익 중 배당으로 사외에 유출되지 않은 금액의 누적액이니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매년 손해가 나지 않는 이상 증가하는 구조이니 사내유보액이 사상 최대라는 말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더 문제인 것은 사내유보액이 많다는 것을 투자 여력이 있음에도 회피한다는 의미로 왜곡한다는 점이다. 사내유보는 실제 지출이 발생하기 전 단계에 대한 장부상의 개념으로서 이후 생산설비 등의 자산으로 투자될 부분도 포함하므로 투자액과 사내유보액은 별 관계가 없다. 게다가 사내유보와는 달리 기업 내에 미(未)이용 자금이 얼마나 쌓였는지를 보이는 현금보유액의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기업의 현금보유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의 관찰이다.

부풀리는 논리 역시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적절히 전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당장 임금피크제로 청년고용이 몇십만 명 늘어나는지를 최대한 부풀려 예측한다고 개혁이 쉬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년까지 도달하는 인구 비중이 극히 낮은데, 정년 연장에 따른 인건비를 임금피크제로 절약한다고 해서 청년고용이 급속히 늘어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노동개혁의 의의는 당장 몇 년 안에 청년 몇 명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더 취업할 수 있느냐로 가둬지지 않는, 훨씬 더 근본적인 차원에 자리하고 있다. 주요 산업의 경쟁력을 잃어가는 지금,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인적역량을 제고해 선진적 경제구조를 갖추고 세대 간의 갈등 요인을 해소하는 것이 지향점이다. 이를 어떻게 한낱 5년 내 청년 일자리 몇 개라는 숫자로 대변할 것인가. 하물며 각 이해세력의 주장이 수시로 검증되는 상황에서 근거를 갖추지 않는 부풀림은 지속되지 않으며, 개혁 주도 세력의 신뢰성만 훼손할 뿐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마라톤이다. 임금피크제를 시작으로 임금체계의 전반적 개편이 뒤따라야 하고, 이후에는 채용과 해고에 대한 절차와 규정이 정비돼야 하며, 비정규직 근로자의 이용 제한을 완화하되 처우의 차별을 해소하는 총체적 개선이 필요하다. 이는 경제 전반의 활력과 적응력을 끌어올려 글로벌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인 한편으로 교육이나 금융, 규제부문 등 여타 구조개혁과 결합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필요조건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인정해야 한다.

마라톤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의 의의와 한계, 병행 조건을 명확히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다. 깎아내려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도 얄팍하지만, 한철 장사가 아닌 이상 그저 부풀리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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