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미 대선과 ‘앵커 베이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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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시절인연’은 김태용 감독과 결혼한 중국 여배우 탕웨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다. 미국 원정 출산을 소재로 삼아 중국 내 로맨스 영화 중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돈 많은 유부남의 아이를 가진 여주인공이 시애틀로 원정 출산을 갔다가 현지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줄거리다.

▷한국에서도 부유층의 원정 출산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중국 임신부들의 원정 출산이 근심거리다. 올해 3월 국토안전부와 국세청 등 합동수사단은 로스앤젤레스 등의 고급 아파트를 급습해 기업화한 중국 중개업소 단속에 나섰다. 원정 출산 패키지 비용이 4만 달러에서 8만 달러를 호가하는데도 중국 임신부들에게 인기가 높단다. 미국은 부모 국적과 상관없이 자국에서 태어나면 ‘출생 시민권’을 준다. ‘시민권 선물’을 위해 외국에 가서 낳은 아기를 ‘앵커 베이비(anchor baby)’라고 부른다. 자녀가 부모의 합법적 체류를 돕는 ‘닻’ 노릇을 한다는, 조롱의 의미를 담은 말이다.

▷요즘 미국 대선의 경선 후보들 사이에서 ‘앵커 베이비’가 뜨거운 이슈다. 공화당 경선 후보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출생 시민권’ 폐지를 주장한 데 이어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아시아계 원정 출산을 콕 집어 비판했다.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지만 멀쩡한 젭 부시는 원정 출산이 아시아인에게 빈발하는 것으로 왜곡해 역풍을 불렀다. ‘앵커 베이비’ 출산은 중남미계 불법 체류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원정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국민의 복지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불만은 미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홍콩의 경우 중국 대학의 특례입학 혜택을 주는 ‘홍콩 거류권’을 노린 중국 임신부들의 원정 출산으로 골치를 썩었다. 원정 출산을 유발하는 국적 문제는 외국인혐오증과도 연계된 민감한 이슈다. 원정 출산은 내 아이에게 남들보다 큰 혜택을 누리게 해주겠다는 부모들의 낯 뜨거운 욕심에서 비롯된다. 지금 사는 나라에서나 원정 출산한 나라에서나 공동체의 균열을 가져오는 주범이 아닐까 싶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원정 출산#앵커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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