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세욱]성년 지방자치가 나아가야 할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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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 전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 전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
지방자치가 성년이 됐다. 중앙정부가 독점해 오던 공공서비스 공급을 20년 전 지방자치단체와 분담했다. 주민의 지위는 ‘통치의 객체’에서 ‘통치의 주체’로 바뀌었다. 임명권자인 중앙정부와 상급기관만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다가 영전하면 그만이라고 여겼던 단체장들은 주민을 바라보고 행정과 지역사업을 펼쳤다. 주민편익시설, 인프라가 확충됐고 생활환경, 삶의 질이 괄목할 만하게 개선됐으며 지방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러나 폐해도 컸다. 단체장들은 재선을 목표로 지역축제 등 생색용·선심성 사업에 예산을 낭비했고 호화 청사도 건립했다. 부실한 대규모 사업과 경영수익 사업, 민자유치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부채가 불어났다. 총 397개 지방공기업 부채도 2013년 결산 기준으로 73조9000억 원에 달했다. 개발허가권 남발과 뇌물수수 비리가 증가했고, 난(亂)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도 심각한 수준이 됐다. 지방공무원 승진 인사 비리도 불거졌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부도덕한 언행, 보좌관 요구, 단체장 발목 잡기, 비리, 관광성 해외연수 등으로 자질 시비와 국민의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재정력이 취약한 지자체들은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돈을 끌어다 쓰는 데 익숙해졌고, 절약하기보다는 내 돈이 아니라서 낭비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정당 공천권을 쥐면서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상전처럼 받들었고 주민은 뒷전이었다. 왜곡된 정당 공천제는 주민의 대표들을 국회의원의 머슴으로 만들었다. 기초자치단체 선거에는 정당 공천제를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민주적 통치 방식과 국민의 높은 정치의식이 요구된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모리슨 매키버의 말이다. 이를 전제로 지방자치에는 ‘분권과 참여’가 필수요건이다. 중앙집권체제 아래서 단체장은 중앙정부의 하급 행정기관일 뿐 지역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권한과 재원이 없다. 국세 지방세 비율은 80 대 20으로 국가에 편중되었고 그나마 지방세원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중소도시와 농촌 지자체는 빈약하다. 지방분권과 재정분권을 서둘러야 한다. 지자체의 기관 구성 형태를 ‘강시장-의회형(Strong Mayor-Council Form)’으로 획일화하지 말고 다양화해야 한다. 시·군 규모가 너무 큰데도 통합을 유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소규모 읍·면·동 주민자치회를 두어 근린자치를 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지자체는 지방공무원을 우수한 전문인력으로 키워야 한다. 자치경찰제를 시행하여 민생치안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시도교육감 직선제는 한 지방정부 내 시도지사와 시도교육감이란 ‘머리 둘 달린 기형조직’을 만들었다. 다른 나라에는 유례가 없다. 민선 시도지사가 교육 사무를 담당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억지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대통령과 교육대통령을 따로 뽑아야 한다. 시도지사 소속 아래 상대적 독립성을 가진 교육집행기관을 두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후보 검증도 않고 투표했고 지방정치인을 감시하지도 않았다. 기호 1번 또는 2번에 줄투표를 했고 투표한 후보의 이름도 몰랐다. 비리 전력자, 전과자도 당선됐다. “찍은 손목을 잘라버리겠다”며 후회했지만 얼마 후 잊어버리고 다음 선거에서도 같은 투표 행태를 되풀이했다. 이제는 ‘내가 이 지역의 주인’이란 자치정신을 가지고 도덕성, 인품, 능력을 철저히 검증하여 뽑아야 한다. 헌법은 지방자치를 보장하고 있으나 실질적 보장 장치는 하나도 규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국회의 입법에 맡김으로써 정치인들이 이해관계 또는 당리당략에 따라 반(反)자치적 입법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 이 위기를 지방자치 발전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 전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
#성년#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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