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로버트 파우저]익선동의 상업화를 걱정하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1년도 되지 않은 9개월 만에 서울 종로3가 북쪽에 있는 익선동에 가보니 예전에 조용했던 한옥 골목에 카페가 들어와 있었다. 한옥 대문 및 문간방 벽의 일부를 철거해 테라스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 오랫동안 자리를 잡은 한옥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실망스러웠다. ‘쿨한’ 카페로 변신한 내부에서 음악이 흘러나와 조용했던 골목은 이제 조용하지 않다.

익선동의 역사적 가치를 생각하면 북촌의 유명한 가회동만큼 중요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창덕궁에 가까워 별궁이나 왕실의 시설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기능을 잃어 1920년대 말에 건양사라는 주택개발사가 매입해 분양용 도시형 한옥 단지를 지었다. 건양사 설립자인 정세권은 1920년대의 문화적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해 한국의 전통적 건축양식을 도시공간에 적용하면서 ‘조선인을 위한 조선 집’이라는 서울의 독특한 도시형 한옥을 개발했다. 마당, 온돌방, 대청, 그리고 기와지붕을 전통적 건축에서 빌려왔고,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당시로는 새로운 재료인 유리 및 타일을 활용했다.

그 후 1930년대 중반에 정세권은 북촌 명소인 가회동 한옥 단지를 개발했다. 그는 1942년에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져 당시 국어학자 33명이 검거됐을 때 그들을 지원한 사람으로서 재산이 몰수되는 등 탄압을 받았고, 광복 이후에 낙향하면서 더이상 집을 짓지 않아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확산된 한옥 붐 때문에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익선동은 서울 주택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며 도시형 한옥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한국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려고 했던 문화민족주의 운동의 하나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익선동은 가회동과 달리 서민 및 빈민의 주택지가 됐다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재개발이 추진되었다. 많은 오래된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집주인이 필요한 수리를 포기하는 바람에 집이 많이 손상됐고, 북촌처럼 한옥 수리를 위한 지원 제도도 없다.

익선동은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지만, 역사적 가치 그 자체의 가치는 높지 않기 때문에 재개발 및 상업화의 사이에 있다. 집주인들은 재개발을 대체할 만한 이익을 찾을 것이므로 주거보다 카페와 같은 상업시설의 임대료가 더 높다.

여기서 집주인이 욕심이 많다는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적 비판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집주인이 이익을 찾을 권리가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반대로 관의 규제에 대한 반감은 크다.

그런데 세상에 ‘순자본주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 중심인 자본과 ‘공공의 이익’ 중심인 관은 협력 및 갈등의 관계에 있다. 관이 세금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익을 위해 사업하면 자본이 반응하지만 공익을 해치는 경제활동은 규제의 대상이 된다.

지금 익선동을 보면 공공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적 가치를 생각하면 한옥 중심으로 보존이 되어야 하고 그 한옥의 역사성도 존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공익을 대표해야 할 서울시가 보존을 위해서 나서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촌 또는 서촌에서 시행한 것과 같은 정책을 도입할 필요는 없다. 그 지역과 달리 익선동의 한옥마을은 다른 형태의 건축물이 들어오지 못했던 ‘한옥 섬’이다. 가회동조차도 1990년대 중순에 연립 건물이 몇 개 지어졌다. 게다가 익선동의 용도는 모두 상업이지만, 다른 지역은 주거 용도가 많다.

익선동은 또 다른 ‘공익’이 있다. 2015년 서울의 여기저기 ‘핫한’ 동네를 보면 커피, 맥주, 와인 등을 중심으로 비슷한 상업시설이 들어오면서 임대료가 상승하고 오래된 근린 상업시설을 밀어내 다양성이 없는 지루한 카페 촌이 되어버린다. 이 상황 속에 익선동은 또 하나의 카페 촌이 되지 않도록, 다른 지역에서 찾기 어려워진 상업시설을 육성하는 것도 공익이 된다. 공공자금이 필요하겠지만, 벤처 기업을 육성하는 인큐베이터가 있듯이 서울시가 독창성이 있거나 임대에 예민한 상업시설 육성을 위한, 한옥을 대상으로 하는 인큐베이터를 운영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이상주의적 소망이지만, 익선동이 ‘한옥 섬’인 만큼 커피 바다가 되어버린 서울 안에 새로운 상업시설, 다른 지역에서 밀려난 옛 상업시설의 섬이 되는 게 어떨까. 그것이 서울다운 도시형 한옥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 아닐까 싶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