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복지재정과 비겁한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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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대비 소득세 세수 3.7%… OECD 평균의 절반도 안돼
한국 복지재정 부족 주원인 중산층이하 낮은 稅기여 때문
‘해답’ 뻔히 아는 정치권… 중산-서민층 설득엔 눈감고
“부자 증세, 법인세 인상”… 한계 뚜렷한 대책만 떠들어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고용주가 근로자를 고용함으로써 들어가는 직접 비용, 즉 월급과 상여금 그리고 사회보험과 연금의 고용주 몫 등을 모두 합쳐 100이라 하자. 급여 수준이 딱 중간에 있는 중위소득 근로자라면 이 중 얼마를 집으로 가져갈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를 보면 64를 근로자가 가져간다. 나머지 36은 국가가 세금과 사회보험 등으로 거두어 간다. 벨기에 같은 나라는 근로자가 44를, 국가가 무려 56을 거두어간다. 고액 연봉의 고소득자가 아닌 딱 중간을 받는 중위소득자의 이야기다.

우리는 어떨까? 근로자가 약 80, 그리고 국가가 20 정도를 가져간다. OECD 회원국 평균과도 큰 차이가 난다. 당연히 칠레 멕시코 등과 함께 OECD 회원국 중 근로자가 가장 많이, 그리고 국가가 가장 적게 가져가는 그룹에 속한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비과세 대상자, 즉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의 수도 많다. 다른 나라들이 대체로 20%인 데 비해 우리는 30%가 넘는다. 자연히 소득세 세수(稅收)와 국가의 재정수입도 그만큼 줄어든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의 소득세 세수는 3.7%다. OECD 평균 8.6%에 비해 약 5%포인트 차이가 난다. 그 정도면 OECD 회원국 평균 국민부담률인 34.1%와 우리 국민부담률인 24.3%의 차이의 딱 절반이다. 약 70조 원이다. 부자가 덜 내기도 하지만 중산층과 그 이하 소득계층의 기여가 적은 것이 한국의 재정력을 이렇게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과 그 아래 소득계층의 부담과 기여가 이렇게 낮은 상태에서 높은 수준의 사회서비스와 복지를 구현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어렵다. 무엇보다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부자에게서 거두면 된다고 한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말처럼 미국도 한때 최고 세율이 90%를 넘었다. 그러고도 경제는 경제대로 좋았다. 우리라고 못할 바 없다. 그러나 그건 그때 이야기다. 경제위기와 전쟁, 그리고 전쟁 뒤의 고도성장 같은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들고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말하자면 자본의 이동성이 낮은 때였다.

지금은 다르다. 자본의 이동성이 높고 저성장 기조가 강하다. 국가 간 공동 보조가 있기 전까지는 이리저리 조심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의 경우 부자들에게 적용되는 최고 세율은 41.8%, OECD 평균 43.3%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더 거두려 해도 그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법인세는 더하다. 기업을 우리 땅에 붙들어놓고, 외국 기업을 불러들이기 위한 국가 간 조세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환경이 좋으면 높은 세율로도 기업을 붙들 수도, 불러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어디 그런가. 특히 우리처럼 수시로 흔들리는 남북관계 같은 부정적 환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지출구조를 합리화해 돈을 마련하는 것이나 조세 감면을 줄여 세수를 늘리는 것도 그렇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필요한 만큼 재원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산업 경쟁력 강화 등 만만치 않은 이유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그렇다. 어떤 경우에도 중산층과 그 아래 소득계층의 부담과 기여를 늘리지 않고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사회서비스와 복지를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 찾아 봐라. 어디 그런 나라가 얼마나 있는지.

사실 중산층 이하 계층의 부담은 부담이 아닐 수 있다. 여러 형태의 혜택으로 다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주 좋은 보험이자 공동구매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제대로 된 비전으로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대상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애써 이 문제를 외면한다. 몰라서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데다 올바른 비전을 제시할 능력도, 또 이를 바탕으로 중산층과 그 아래 소득계층의 양보와 인내를 이끌어 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만있기나 하지 늘 뭘 더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러면서 부자 증세에 법인세 인상, 그리고 지출구조 합리화와 감면 축소 등 그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는 수단들을 나열하고 있다. 한마디로 비겁하다. 그런 모습으로 ‘이기자’ 구호나 외치는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래서 관심이 없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지건.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복지#GDP#부자 증세#법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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