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34 대 5’가 야당 탄압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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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이 현재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 숫자를 공개했다. 새정연 34명, 새누리당 5명이다. 다른 야당은 제외다. 이를 근거로 새정연 의원들은 사정당국이 야당을 탄압하려고 의도적으로 벌인 표적수사, 기획수사, 편파수사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유신시대’ 운운하기도 한다. 34 대 5라는 대비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짜 그런지 하나하나 따져보자.

박지원 의원은 3건의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2건은 올해 6월 만만회(박지만 이재만 정윤회)의 인사개입 의혹과 2012년 4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저축은행 관련 청탁 의혹 제기에 따른 명예훼손 사건이다. 둘 다 방송을 통해 떠들어 논란을 촉발시킨 데다 명예훼손 관련이니 검찰이 의도를 갖고 수사했다고 볼 수 없다. 나머지 1건은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등 3명으로부터 8000만 원을 받았다는 비리 혐의다. 저축은행 사건으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등 수많은 사람이 수사를 받았으니 이 또한 표적수사와는 거리가 멀다.

강기정 이종걸 문병호 김현 의원은 2012년 12월 국가정보원 여직원 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사건의 성격을 떠나 당사자의 고발에 의한 것이니 수사는 당연하다. 김현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으로도 수사를 받고 있다. 박범계 의원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유병언의 시신이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자유청년연합으로부터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했다. 어느 것 하나 표적, 기획, 편파수사라고 보기 어렵다.

나머지 의원들은 모두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입법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됐다. 치과의사협회 관련에 양승조 의원 등 13명, 물리치료사협회 관련에 이종걸 의원 등 11명, 한전KDN 관련에 전순옥 의원 등 2명,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관련에 신계륜 신학용 김재윤 의원 등이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단체 내부의 횡령이나 뇌물 관련 수사로 촉발됐다가 입법로비 수사 쪽으로 옮겨간 경우도 있고, 이해단체들 간의 다툼이나 외부의 고발이 수사의 원인이 된 경우도 있다. 검찰 경찰이 처음부터 정치적 의도를 갖고 덤볐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입법로비 사건에 여당 의원도 일부 포함돼 있지만 유독 야당 의원이 다수 연루됐다는 것은 이채롭다. 여당보다는 야당 의원들이 소액 후원금을 많이 받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국회선진화법으로 과거와 달리 야당 의원들의 힘이 세지면서 로비가 집중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새정연은 권선택 대전시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를 두고도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거 관련 수사는 주로 고발로 이뤄진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수사당국이 여당 야당을 가리겠는가. 광역단체장은 여야 포함해 12명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가 현재 8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야당의 안희정 충남도지사, 송하진 전북도지사, 윤장현 광주시장, 이낙연 전남도지사도 불기소다. 기초단체장은 새누리당 소속(9명)이 새정연 소속(4명)보다 더 많이 기소됐다.

130명의 의원 중 34명이 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당 지도부가 국민에게 머리를 숙여 사죄해야 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새정연은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듯 스스로 숫자를 공개하고 이들을 감싼다.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를 만들고 대검찰청을 항의 방문하면서 이전에 익히 봐왔던 억지까지 부린다. 말의 신뢰, 법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자충수다. 이런 야당을 보면서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할까.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새정연#박지원#강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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