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개헌, 문제는 대통령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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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고백하자면 작년까지 나는 개헌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5년 단임 대통령은 성과를 내기 어려우니 4년 중임제가 좋다는 정도였다. 대한민국 정치의 갈등과 비효율은 개헌과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최근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들은 “승자독식 패자불복의 권력구조가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고 불임(不姙) 국회를 만든다”고 입을 모았다.

개헌 논의는 예산국회에서 일시 가라앉았지만 조만간 다시 떠오를 것이다. 이원집정부제든 의원내각제든 분권(分權)형 대통령제든 최근 논의의 초점은 대통령의 권력을 나누자는 것이다.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분권형 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단지 여야가 짝짜꿍이 돼 더 많은 권력을 갖겠다는 꼼수만은 아니라고 본다. “싸우고 싶지 않은데 현실은 싸움만 하게 된다”는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개헌을 하든 안 하든 현재 정치체제의 문제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첫째,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됐다. 51% 득표로 49% 득표자를 눌러도 모든 권력을 싹쓸이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인사권 행정권은 물론이고 사실상 입법권까지 갖고 있다. 국회를 통과하는 법의 70% 이상은 정부의 청부 입법이다. 감사원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같은 권력기관들도 줄줄이 아래로 들어온다.

사실 지금 헌법도 운용하기 나름이다. 국무총리가 실제로 국무위원을 제청하고 감사원장이 감사위원을 제청하면 된다. 그러나 모두 형식일 뿐 실제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권력을 나누기보다 오히려 헌법에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 했다. 김대중 정부가 자민련과 연정(聯政)을 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정도가 예외다. “사람을 바꾸느니 제도를 바꾸는 게 더 쉽다”는 말이 나온다.

둘째, 야당은 다음 권력을 잡기 위해 5년 내내 발목잡기만 한다. 국회가 다음 대선의 전초기지가 되고 상대방이 망해야 내가 사니까 여야는 어떤 합의도 하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이라지만 야당의 반대 때문에 되는 정책이 없다.

셋째,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은 “권한의 30%는 대통령이 행사하지만, 30%는 측근들이 행사하고 30%는 공중에 붕 뜬다”고 했다. 그래서 늘 측근 비리가 만연하고 10개월씩 주요 공직 자리가 비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미처 다 사용하지도 못하는 권력을 양손에 움켜쥐고 있는 셈이다.

넷째, 비(非)전문가들에 의한 국정 혼란이다. 노무현 정부 때 386운동권들이 대거 정부에 들어간 것이나 이명박 정부 때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원세훈 씨가 국정원장이 된 경우다. 안철수 반기문처럼 졸지에 국민의 인기를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의 선거캠프에 줄을 댄 새로운 인물들이 권력을 쥘 것이다. 의원내각제는 미리 섀도 내각을 구성해 의외성을 줄인다. ‘국회의원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지만 대통령의 수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보단 선거를 통해 오래 검증된 정치인이 나을 수도 있다.

다섯째,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나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 고도화 다양화됐다. 국민들은 자신보다 훌륭한 대통령을 원하지만 이젠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국민 수준은 높아지고 대통령의 리더십은 점점 평범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순수 대통령제 국가는 한국 미국 칠레 멕시코뿐이다.

내가 보기에 정치혁신을 추구하는 의원들의 개헌 의지는 강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회를 믿지 않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권력 구조별 장단점을 국민들과 더불어 충분히 토론해야 할 것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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