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IT의 김종훈, 생명과학의 찰스 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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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오피니언팀장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며칠 전 서울대 의대 교수들과 저녁 모임을 했다. 최근에 기자가 인터뷰해 보도(10월 13일자)한 찰스 리 박사(45)가 화제가 됐다. 리 박사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가 수상은 못했지만 유전체 연구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꾼 세계적인 과학자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암유전자 연구도 진행하고 있어 국내 의과학계에도 꽤 알려진 사람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적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참석한 의사들이 “미국인들이 7일 코네티컷 파밍턴 시에 새로 문을 연 잭슨연구소의 유전의학연구소에 아시아 사람을 소장으로 앉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 물었다. 기자는 “생각보다 굉장했다”고 말했다.

쥐 실험을 통해 생명의학을 선도해온 잭슨연구소는 이번 파밍턴 연구소 개소를 계기로 유전자 연구를 통한 암과 난치병 극복에 주력할 계획이다. 개소식에서 가장 기자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연구소 본사와 주 정부가 리 박사를 영입하기 위해 들인 노력이었다. 우선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 보스턴에 생활 기반이 있는 그에게 코네티컷으로의 이주를 권하면서 예일대 의대 석좌교수직을 보장하고 연구소장직도 무려 10년을 보장했다. 운영에 관한 전적인 권한은 물론이고 실험용 쥐를 무제한으로 사용해도 좋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실험용 쥐는 마리당 수백 달러씩 할 정도로 비싸다).

15년간 하버드대 의대에서 제자들을 길러온 리 박사로서는 생활 터전과 직장을 갑자기 옮기는 일이라 자녀 교육 등 여러 가지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연구소와 주 정부의 파격적 지원에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고 한다. 연구소 건설비용(3000억 원)과 향후 10년 동안 1조 원이 투입되는 연구 예산의 절반가량을 지원한 주 정부도 연구소가 가져올 고용 창출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1만6000여 명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대널 멀로이 주지사의 말이다.

“코네티컷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적인 시도가 시작됐다. 연구소 건설에 들어간 예산은 코네티컷 시민들의 세금으로 마련됐고 건물을 지은 사람들도 우리 시민들이다. 연구소가 새 일자리와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리라 확신한다.”

미 인간유전체연구소(NHGRI)의 에릭 그린 소장도 “연구소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의회, 정부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노벨상 이야기로 넘어갔다. 기자가 참석자들에게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노벨상을 탔으면 좋겠다는 리 박사의 말을 들으면서 단순한 애국심 차원이라기보다 한국 의료의 잠재력을 정말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수한 인력, 잘 정돈된 건강진단과 치료 데이터 등 한국이야말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조건을 갖고 있다고 보더라”고 하자 참석자들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는 마당에 찰스 리의 존재는 어떻게 보면 밖에서 주어진 기회인데 관계당국에서 아직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리 박사를 보는 눈이 좀 폐쇄적이다.”

“박사가 서울대에 온 초창기에만 해도 ‘젊은 나이에 얼마나 하겠나… 네가 잘나가면 얼마나 잘나가냐’ 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우리 의료수준이 높긴 해도 아직 글로벌 수준의 대응력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물망에 올랐다가 낙마한 김종훈 전 벨연구소장이 떠올랐다. 정보통신의 김종훈도, 생명공학의 찰스 리도 창조경제의 자산으로 삼으면 어떨까.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찰스 리#노벨 생리의학상#IT#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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