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김무성은 왜 오스트리아에 꽂혔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9일 2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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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실제 대통령은 상징적 수반일 뿐… 거대여야 좌우파 대연정으로 권력 나눠먹는 장기집권 가능
새누리-새정연 국회권력 더 키워 제왕적 의원-식물정부 만들 텐가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무대’의 사과는 화끈했다. 무성 대장이라는 별명답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주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텐데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지 딱 하루 만에 “대통령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하고 계신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고, 본인 표현에 따르면 바로 꼬랑지를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는 경제의 블랙홀”이라며 언급을 막아버린 데 맞선 김무성의 치고 빠지기인지, 못 말리는 말실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민감한 사항을 답변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제 불찰”이라는 그의 사과를 되짚어보면, 연말부터는 개헌 논의를 하겠다는 내용엔 변함이 없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1일 현재 가입 회원 152명이라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서 쌍수를 들고 나선 이유는 능히 짐작된다. 그들이 도모하는 분권제 개헌이란 결국 국회 권력 확대, 의원 기득권 보호이기 때문이다.

김무성은 “4년 대통령 중임제가 많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에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선출된 대통령은 외치(外治), 총리는 내치(內治)’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다. 올 오어 너싱(전부 아니면 전무)의 권력 쟁취 게임 때문에 아무것도 되는 게 없으니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을 분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모임 공동회장인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도 “갈등 많은 우리나라에선 합의제 권력구조로 여야가 연정(聯政)하는 오스트리아나 독일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화답했다.

하고많은 이원집정부제 중에 김무성이 왜 하필 오스트리아식에 꽂혔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오스트리아를 알고 말한다면 의도가 의심스럽고, 몰랐다면 한심한 일이다.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수반으로 앉히고 여당과 제1야당이 대연정으로 주야장천 권력을 누리자고 새누리당과 새정연이 짬짜미한 느낌이 들어서다.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국방과 외교를 맡는다지만 이 나라는 영세중립국이어서 안보 위협이 없다. 의원내각제 성격이 강해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도 총리가 간다. 대통령은 ‘권한 포기’를 통해 총리인 다수당 대표가 정해준 각료를 임명할 뿐이다. 모든 행정은 총리의 영역이다. 만일 2016년 4월 총선 이전에 오스트리아식으로 개헌하면 박 대통령은 할 일이 없어질 판이다.

1년 전 총선 1, 2등으로 대연정을 구성한 좌파 사민당과 우파 국민당은 1945년 독립 이래 두 차례만 빼고 한쪽이 반수를 못 넘은 42년간 공동정권을 운영해 왔다. 다른 나라에선 비슷한 이념의 정당끼리 소연정을 하는 게 정상이고 비상한 경우에만 대연정이란 변칙을 쓰는데 오스트리아에선 이걸 ‘합의제 민주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좌파를 찍어도 좌우연정, 우파를 찍어도 같은 연정이니 야당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직은 물론이고 대학까지 여야 동률동수로 갈라먹는 프로포르츠(Proporz·권력 배분)는 유명하다. 사회적 갈등이야 줄겠지만 주요 결정 지연, 정치적 거래, 정실 임용, 부패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나라는 이미 선진국인 데다 경제정책은 EU에서 정하니 괜찮다 치자. 안 그래도 강경파가 득세하는 우리나라에서 좌우 대연정을 한다면 배가 산으로 갈 공산이 크다. 사회갈등은 줄지 몰라도 계파갈등은 심해질 것이다. 종북 성향의 세력이 한쪽 정당에 파고들 경우 정권을 내주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무엇보다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를 연구한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이 “이 나라의 합의제 정치를 때 지난 모형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데도 이 제도를 들여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불행한 퇴임을 맞았다는 사실은 안다. 선진국들이 대개 내각제를 하고 있다는 것도 익히 들었다. 그러나 같은 현행 헌법을 놓고 1988년 언론인 박권상은 “행정부 구성 권한을 대통령이 국회와 공유하는 등 프랑스보다 훨씬 강한 국회, 훨씬 약한 대통령을 만든 헌법”이라고 했다. 국민의 눈에는 “내가 누군지 알아?” 외치는 비례대표가 제왕적 대통령보다 제왕적인데도 국회 권력을 더 키워야 하겠는가.

그래도 개헌 논의를 해야겠거든 권력구조부터 ‘국회 이기주의’ 아닌 국민의 시각에서, 국민의 동의를 받아가며 공론화하기 바란다. 헌법에 보장된 의원 불체포 특권도 빼야 한다. 그 전에,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국정 발목잡기 법’부터 여야 합의로 개정한다면 제도적 개혁에 나선 당신들의 충정을 알아드리겠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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