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예술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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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다. 여기저기 불편하여 병원에 가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벌써 반은 나은 느낌이어서 ‘조금 참을 걸 괜히 왔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다가 막상 의사 선생님 앞에 앉으면 아픈 데가 조목조목 생각나지 않아 어물거려놓고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참, 이거 물어보고 싶었는데”라고 뒷북을 친다.

의사 선생님 얼굴만 봐도 아픈 데를 잊어버리는 이유는 순전히 ‘마음’에서 연유하는 것일 게다. 어렸을 때 엄마가 “엄마 손은 약손”이라고 하시며 슬슬 아픈 데를 어루만지고 쓸어주시면 거짓말처럼 편안해지던 것같이 말이다.

나는 계절의 변화를 알레르기비염을 통해서 감지한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 재채기가 두세 번 연속적으로 쏟아지면 환절기임을 실감한다. 이번 가을도 예외 없이 재채기로 시작되었고, 예전과 달리 즉각 병원으로 달려갔다. 여간해선 병원에 가지 않던 내가 병원 출입이 편해진 이유는 회사 앞 병원의, 예술에 관심이 많은 의사 선생님 덕분이다.

“보름 동안 프로방스에 다녀왔어요. 그랬더니 우울증이 확 사라졌어요.”

봄과 달리 가을에 만난 의사 선생님에게선 활기가 넘쳤다. 많은 환자들에 지쳤는지 무기력하고 우울증이 깊어져서 화가인 친구와 둘이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미술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말년에 암으로 투병하던 앙리 마티스가 건축한 소박하고 간결한 로제르 성당과 고흐와 세잔의 작품들을 보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우울증이 스르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런 말 하면 정신과 의사들이 싫어할 텐데”라는 농담과 함께 마음에 병이 생기면 예술여행을 해보라며 밝게 웃어 보였다.

육체적인 병은 내 몸 하나 망가뜨리지만 마음의 병은 사회적으로 더 큰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과감하게 여행을 떠나는 일도 쉽지 않지만 그것을 예술에 대한 감동으로 치유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평소에 예술적 소양을 쌓아야 가능하다.

“의술은 몸을 고치지만 예술은 마음을 치료하는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 주최한 사진전시회에서 이 말을 듣고 명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술이 의과대학에서 전문 과정을 공부해야 습득되듯이 예술 감상도 아는 만큼 그 깊이를 누릴 수 있다.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 나의 알레르기비염은 그 의사 선생님의 치료로 진정되었지만 예술의 계절 가을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이다.

윤세영 수필가
#병원#대기실#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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