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미국 가정 10곳 중 4곳은 인터넷 설치 안해… 그들이 달려가는 곳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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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다양한 도서와 프로그램을 갖춘 미국의 공공도서관들은 동네 곳곳에 포진해 있다. 사진 출처 미국도서관협회
다양한 도서와 프로그램을 갖춘 미국의 공공도서관들은 동네 곳곳에 포진해 있다. 사진 출처 미국도서관협회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이전 글에서 미국 중산층 소득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에도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내핍과 절약’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안 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싼 물가’다.

미국은 전기료나 전화요금 같은 공과금은 우리보다 비싸지만 전반적인 물가수준은 우리보다 싼 편이다. 보스턴이나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같은 주요 지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지역을 불문하고 특히 먹거리와 관련된 농수산물의 물가가 미국이 한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수박만 해도 한국서는 한 통에 2만 원 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한국 것보다 훨씬 크면서도 가격은 4분의 1인 5000원 정도 한다. 커피값은 말할 것도 없다.

공산품도 마찬가지인데 자동차에서부터 신발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더 싸다.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는 차나 TV 등은 최고급 사양의 고가 상품일수록 한국에서는 정말 불가능한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매장에서 팔린다.

따지고 보면 그만큼 미국인들은 이제껏 전 세계 어느 나라 국민도 누릴 수 없었던 혜택을 마음껏 향유해 왔다. 이제는 그런 혜택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소비할 수 없는 시점이긴 해도 어떻든 아직까지는 의식주와 관련된 기본물가가 한국보다 싸니 한국 중산층의 허리가 더 휜다고 느껴도 무리는 아니리라 여겨진다.

어떻든 미국 중산층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쿠폰의 귀환이다. 미국 경제학자들이 체감경기를 측정하는 주요 지표로 쿠폰 사용률을 예의주시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쿠폰 사용의 증가는 현재 미국 중산층의 팍팍한 삶을 충분히 대변해 준다. 쿠폰 모으기는 미국 서민의 중요한 일상 중 하나다. 신문구독률이 매우 낮은 미국도 일요판 신문만큼은 상대적으로 잘 팔리는 편인데 이유는 바로 일요판에 쿠폰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일요판 신문 외에도 각종 광고우편물, 인터넷에서도 쿠폰만을 갖춘 사이트가 있을 정도로 쿠폰이 대세다. CNBC 보도를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9∼11월에 미국인들은 불황이 본격적으로 닥치기 이전보다 쿠폰을 더 많이 잘랐다. 이후 7년간 그 아래 수준으로 절대 떨어지지 않다가 2012년 말 또다시 급등세를 보였다.

여기엔 두 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갈수록 경제적 압박을 더 느낀다는 것과 또 다른 불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미국 중산층이 푼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대표적인 게 도서관 이용이다. 미국 도서관은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 도서관이 각종 시험 준비를 위한 독서실 기능이 주라면 미국 도서관은 그 이상이다. 미국서 생활하다 보면 도서관이 쇼핑몰 다음으로 사람을 많이 구경할 수 있는 인구 밀집 공간이라는 것을 느끼며 놀란다. ‘외로울 때에는 도서관으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 도서관들은 각종 취업정보와 새로운 기술 강의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또 추위와 더위를 피해 도서관으로 가면 집의 연료비도 아낄 수 있다. 컴퓨터와 와이파이, 전기도 무료로 쓸 수 있다. 고작 인터넷 비용 아끼려고 도서관에 간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 한국인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질문은 미국의 현실을 정말 모르는 이야기다.

미국 가정에서 우리처럼 인터넷 전용선을 깐 집은 2011년 62% 수준이다. 다시 말해 미국 가정 10곳 중 4곳은 집에 인터넷 선을 깔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왜 집에 인터넷 선이 없느냐”는 질문에 35%의 응답자들이 “돈 때문”이라고 답했다.

집에 인터넷 선이 없는 미국인들은 도서관 아니면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으로 달려간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뉴욕의 한 커피매장에서는 커피 한잔으로 하루 종일 매장을 떠나지 않고 전기를 써대는 얌체족을 퇴치하기 위해 매장의 전원코드를 막아 버려 원성을 산 적도 있었다.

미국도서관협회는 미국 전역의 공공도서관 중 62%가 관할지역에서 일반 대중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는 유일한 장소라고 발표했다. 중산층 중 상당수가 집에 컴퓨터조차 없어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 예산 삭감으로 도서관 운영시간과 직원이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서민들은 조만간 도서관에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 밖에서 배회하는 사람들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고 있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인터넷#도서관#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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