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주강현]돈이 모든 걸 지배하는 상황에서 안전은 불가능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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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 제주대 석좌교수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 제주대 석좌교수
환동해권 조사로 일본 호쿠리쿠(北陸) 해변을 돌아다니던 중에 소식을 들었다. 일본 언론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때를 만난 듯 ‘3류 국가’ 소개에 열을 올렸다. 해양 전문가들이 물어왔다. “해난사고 기동특공대를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거부했다는군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돌아와 신문을 보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민족 감정 때문에 거부한 것을 조금 이해해 준다 해도, ‘스스로 구할 능력도 없으면서’ 하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잘나간다는 조선 강국 한국, 이번에는 왜 그렇게밖에 못합니까.’ 외국 해양계 지인들이 안타까운, 그러나 가시가 돋친 분노의 e메일을 보내온다. 어린 생명을 집단 수장시킴으로써 한국의 국가 해양력이 일거에 무너지는 순간이다.

총체적 부실 대응의 발단 ‘해경’

사건을 총체적으로 복기해 보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을 놓쳤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시간이 채 안 되지만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이 허비되었고, 마지막 결정적으로 중요한 10여 분이 그냥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사라져버렸다. 거기에는 도망친 선장은 물론이고 국가 시스템 자체와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없거나 무너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이런 국가를 어떻게 믿고 살 것이며, 이런 나라에서 누구더러 아기 낳아 기르라고 할 것인가.

우선 짚어야 할 것은 해양 재난을 통합 관리하지 못하는 허약한 국가안전 시스템이다. 해양 통합 부서인 해양수산부는 지난 정부에서 없어졌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신생 부서다. 해양안전헌장과 관련 법규를 정비하고 안전 문제에 채비를 하면서 조직을 추스른 건 최근이다. 안전행정부를 모든 재난의 중심으로 설정했지만, 바다 전문성이 결여되고 인적·물적 시스템도 없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 더구나 해경은 진도관측소 관할로 세월호가 들어온 것도 몰랐고 충분히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해 부실 대응의 발단을 제공했다.

이 모든 문제는 해난사고에 관한 해수부의 총합적 장악 능력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수부와 해경, 해경과 해군, 게다가 안행부까지 만들어져 혼란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해양대기청(NOAA)이 바다에 관한 한 모든 권한을 갖고 해결해 나가는 것과 비교해 볼 일이다. 지금은 해양재난의 통합적 정책을 구현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모든 게 돈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안전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조선 강국 한국이 여객선을 못 만든다는 것에 의아해하지만 이는 사실이다. 조선(造船) 회사 입장에서는 거대 독(dock)에서 작은 객선을 만들어봐야 수지가 안 맞는다. 객선은 화물선과 다르게 내장, 즉 인테리어 등도 중요하다. 선주로서는 비싼 배를 사오느니 폐선 직전의 외국 배를 사들이고 C급 회사에 하청을 주어 건조 당시의 안전기준을 벗어나 멋대로 층수를 높인다. 이는 1950년대에 미군 트럭 두드려서 버스 만들던 방식인데, 위험천만한 바다를 항해하는 거대 객선에 아직도 1950년대식이냐고 하겠지만 중고배를 10분의 1 고철 가격에 사들여 단 몇 푼 들여 본전을 뽑을 수 있으니 선주로서는 안 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지난 정부는 규제를 푼다고 여객선 선령 제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늘려 폐선을 사들여올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선사해 주었다.

관료출신들은 사업자 ‘방패막이’

이런 상황을 통제 감시할 공적 시스템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안전을 책임진 해운조합과 선급협회, 그리고 선주들이 모두 뒤얽혀 관료 출신 기관장들이 이 기관들을 감독하니 적당한 선에서 유야무야 넘어간다. 로비 비용의 10분의 1도 안전 비용에 쓰지 않은 청해진해운 선주에게 무슨 안전을 기대하겠는가. 중요 항로 선정의 결정 과정은 엄청난 로비를 요구한다. 로비에는 국회의원도 동원된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국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관료들 불러다가 호통이나 친다고 해결될까.

우리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바다를 ‘갯것’이라 하대했다. 바다를 대하는 품격이 없는데 어찌 선장의 품격을 논하겠는가. 비정규직과 비전문가로 가득한 낡은 배에서 박봉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무슨 타이타닉호 선장 같은 위엄을 기대하겠는가.

맹골수도는 소문난 험한 수로다. 오죽하면 가사도와 조도군도 곳곳에 일제강점기부터 등대가 있었을까. 선장은 최소한 배에 입회했어야 했다. 그러나 선장만 문제인가. 선원들 누구도 비상벨도 누르지 않았고 전원 무사히 탈출했다. 배를 버리고 선원 전원이 탈출한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오죽하면 외국의 선장과 함장들이 ‘선장의 품격’을 저버린 행동에 대해 국제적 비난을 시작했겠는가. 세월호 선주는 필경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밸러스트 탱크에 물을 넣지 않는 방식으로 기름값을 절감하는 묘수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착하고 불쌍한, 평소에 바다에 관한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입시 공부에만 내몰리던 어린아이들이 그만 수장되고 말았다. 우리 어른들 모두의 잘못이다.

카페리를 금지한 국제해사기구

한국에서 카페리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지적한 논의가 없었다. 본디 화물과 승객을 같이 태우는 카페리는 근본이 불안정한 배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도 차츰 로로선(승객과 화물을 같이 싣는 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제주 카페리 폐지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이번에 침몰한 세월호를 타본 적이 있다. 승용차를 실었는데 결박장치를 그야말로 대충 걸었다. 나중에 안 내용인데 이 일조차도 하청을 주었단다.

제주 카페리는 더더욱 이상한 노선이다. 전남 장흥에서 떠나는 최단거리 노선도 생기고 제주행 저가 항공도 생겨났다. 수학여행이나 집단적 여행, 개별적 자유여행자가 없다면 제주 노선은 예전 같은 영화를 누리기 어렵다. 요즘 같은 때 제주도 간다고 비행기를 타지 누가 배를 타겠는가.

그러다 보니 인천∼제주 노선은 한마디로 ‘서민 노선’이 되고 말았다. 제주 노선은 말만 국내선이지 중국 칭다오나 일본 후쿠오카로 가는 국제 노선보다 더 긴 국내 노선이다. 그런데 규정은 국내선이다. 싼 배에 싼 가격에 싸구려 안전의식이 덧칠돼 있었으니 참사는 예고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단거리를 뛰는 연안객선은 보조 항로가 많고, 정치권의 표심 잡기 노력으로 섬사람들 뱃삯의 절반을 정부에서 보조해 주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선주 입장에서는 수입의 절반은 늘 보장된다. 그러니 어떤 선주가 비싼 배를 띄울 것인가.

해양 전문가들은 이런 모든 시스템의 문제를 알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침묵 중이다. 관료들만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해양 전문가 교수들도 관료, 업체, 직원 등과 인적으로 얽혀 있다. 대한민국호가 총체적으로 침몰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침몰하는 대한민국호

구조 작업에도 문제가 많다. 맹골수도는 조류가 센 곳이다. 그런 곳에 미국 로봇을 들이민다, 머구리(민간 잠수부)들이 군인들보다 낫다는 무지들이 판을 친다. 로봇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강한 조류를 어찌 당하겠으며, 산소탱크에 의지하여 기동성 있는 작업으로 훈련된 군인들을 지상에서 공기 주입을 받고 1시간여 해산물을 채취해 온 머구리들이 어찌 능가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배는 차츰 펄 속에 깊숙이 박히고 있다. 맹골은 물펄이 강한 곳이다. 펄에 박히면 이 거대한 배는 그야말로 절망적이다. 단기간에 배 인양은 불가하고 모든 시신의 완전한 인양도 어렵다고 본다. 온갖 설이 나돌고 있지만 불행은 점차 깊은 펄 늪으로 더 깊게 빠져들고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에서도 에어포켓에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지만 시신만 건졌다. 사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세월호의 정확한 전체 도면조차도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세월’이 가고 있다.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둡고 차가운 물 속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이 자괴감…, 이것이 해양 한국의 참모습인가. 아이들의 목숨 값 바친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도 우리는 어떤 결정도 제대로 못 내리며 거센 물길에서 방황하는 중이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 제주대 석좌교수
#해양수산부#여객선 선령 제한#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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