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해]이건희 뒷다리論과 선행학습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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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학군이 좋기로 소문난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롱펠로중학교. 7학년(한국의 중1) 학생이 들을 수 있는 수학 과목은 3종류다. 보통 학생은 수학7, 좀 잘하면 고급수학7, 우등생은 고급대수1을 선택한다. 아주 잘하면 8학년 고급기하를 들을 수 있다. 철저히 성적에 따라 선택한다. 고교 과정을 중학교 때 들으면 고교 진학 후 학점으로 인정된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영어나 사회, 과학도 학년마다 수준별 3단계다.

영재교육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된다. 지능지수(IQ) 검사와 학업성적, 교사의 관찰, 제출 과제물, 교사와 부모 추천서를 종합 평가해 영재를 골라낸다. 한번 영재반에 들어가면 중학교까지 이어진다. 중간에도 들어갈 수 있지만 따라가려면 고생이다. 수학 영재 초등 5학년생이 인근 중학교에서 수학을 배우기도 한다. 교통편도 학교에서 마련해준다. 영재 반에선 통상 한 학년이나 두 학년 높은 과정을 가르친다. 심화 선행학습을 학교에서 하는 것이다. 미국 공립학교는 주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외딴 오지가 아닌 한 이런 영재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버드대나 매사추세츠공대(MIT) 같은 아이비리그(미 동부 명문대학)에 들어가려면 고교에서 대학 과정인 AP(Advanced Placement)과목을 얼마나 들었는지가 중요하다. 미리 대학 과목을 선이수하는 프로그램이다. 고교 과목에서 A학점 받은 것보다 B를 받아도 AP과목 수강을 높게 쳐준다. 학문적으로 얼마나 도전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고교 2, 3학년 때 수강한 AP과목 수와 성적은 대입에서 결정적이다. 대학 학점으로 인정되니 대학에서 다시 수강할 필요가 없다. 대학에선 더 높은 수준의 과목을 수강하라는 얘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칭찬하지만 착각하면 안 된다. 획일적 주입식 평준화 교육을 부러워하는 게 아니다. 한국 학부모의 유별난 교육열을 ‘평범한’ 미국 서민이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부모의 교육열이 전반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부자일수록, 부모의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교육열은 높다. 미국 교육시스템은 뒤처진 학생을 닦달하는 것 못지않게 우수 학생을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상위 1% 영재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다. 진도를 못 따라가는 지진아를 구제하는 낙제학생방지(NCLB·No Child Left Behind)법이 있는 반면에 과학, 수학 영재를 키우려고 대통령이 나선다.

영재 과학고에 다른 공립학교보다 2, 3배 많은 예산을 줘도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바마는 과학 수학 경시대회 수상 학생과 지도교사를 백악관에 초청해 격려한다. 해마다 아이비리그에 입학하는 한국 학생이 적지 않지만 이들이 최고 수준의 미국 대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지는 의문이다.

“삼성에 우수한 인재가 70∼80% 있다. 그런데 서로 뒷다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만 잘난 줄 알고 있다.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놀아도 봉급 주겠다. 대신, 뛰는 사람 뒷다리 제발 좀 잡지 말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며 신경영 선언을 할 즈음 했던 말이다.

오늘날 삼성전자를 일궈낸 이 회장의 DNA는 세계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1등주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장들 모아놓고 책상을 내리치며 군기 잡은 이 회장이 강조한 말은 “앞서 가는 사람 뒷다리 잡지 말라”였다.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한 한국 교육부 관리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제발 잘하는 학생 뒷다리 좀 잡지 마라.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수학#선행학습#영재교육#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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