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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배극인]안 의사와 동양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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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배극인]안 의사와 동양평화

동아일보입력 2013-12-23 03:00수정 2013-12-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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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도쿄 특파원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출신인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 교토산업대 세계문제연구소장에게서 갑작스레 연락이 온 것은 이달 초였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할 얘기가 있으니 꼭 좀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일본에서 안중근은 범죄자”라고 발언해 한일 외교 전선에 찬바람이 불던 때였다.

도고 소장은 도쿄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자마자 “일본에는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말고도 안 의사를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지바 도시치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고 중국 뤼순 감옥에 수감됐을 때 간수였다. 안 의사를 증오했던 그는 점차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인격에 감복해 나중에는 ‘의사’라는 존칭을 쓰며 우정을 나눴다. 일본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는 안 의사의 사진과 묵서를 모셔 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명복을 빌었던 일로 유명하다.

도고 소장은 가방에서 안 의사에 대해 일본인이 쓴 책 4권을 꺼냈다. 이 중 한 권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왜 일본인은 한국인을 싫어하는가’라는 도전적인 제목 때문만은 아니었다. 책의 저자가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 논객,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씨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 주한 일본공사를 지낸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외교 가정교사로 통한다.

책장을 넘기자 예상 밖의 내용이 펼쳐졌다. “안중근은 사실은 교양 있는 이조(李朝) 말기의 애국자다. 어릴 때부터 배포가 크고 문무에 뛰어난 데다 의병을 이끌고 일본수비대와 제대로 싸운 점을 보면 통솔력도 있다. 일본인으로 치자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5∼1867)처럼 메이지유신의 지사 가운데서도 일류 클래스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오카자키 씨는 서울 시내 안중근기념관을 반드시 들러봐야 할 장소라며 이렇게 적었다. “내가 안내한 일본인 열이면 열이 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이런 줄 몰랐다’는 것이다. 안중근의 글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안중근이라는 훌륭한 의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당시 일본인들이 경쟁하듯 옥중에 있는 안중근의 휘호를 얻어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당시 일본인들은 안중근의 위대함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후세의 우리에게 ‘폭한 안중근’이라고 가르친 셈이 된다.”

오카자키 씨는 한 미국인 정치학자가 안중근에 대해 “아, 그 한국인 광신도”라고 말한 일화를 소개하며 이는 미국이 일본의 영향을 받아 한국 근대사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중근에 대해 ‘아, 그 한국인 애국자’라고 말하는 게 상식이 될 때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한국 근대사에 대해 연구를 통한 성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고 소장은 “놀랄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 “일본에서 조금이라도 안중근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 그를 존경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가 장관의 얕은 식견을 한탄했다. 동시에 한국 정부가 안 의사 의거 현장인 하얼빈에 표지석을 설치하려는 배경에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중이 일본을 배제하는 ‘심벌(상징)’로 안 의사를 앞세우는 것은 안 의사의 정신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안 의사는 일본을 위해 이토를 저격했다고 했습니다. 민족주의를 벗어난 큰 틀로 동양 평화를 주창했습니다. 그를 민족주의의 심벌이라는 편협한 틀에 가둬서는 안 됩니다.”

동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요즘 한중일에 절실한 화해와 협력의 ‘횃불’은 다름 아닌 안 의사라는 주장이었다. 도고 소장의 말은 여운이 길었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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