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기욱]창조경제 하려면 인종을 섞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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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이스라엘 경제 경쟁력의 힘은 문화 다양성
피부색-종교-음식… 다름을 존중 못하는 국가-기업, 창의성-혁신 기대 어려워
글로벌 인재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문화-환경 만들어야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애플의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라는 도시가 있다. 스탠퍼드대와도 가까운 이곳은 실리콘밸리 기술 혁신의 첨병인 인도와 중국계 엔지니어들의 일과 삶의 터전이다.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아시아 문화가 흥미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는 미국의 백인들끼리 만든 것이 아니다. 각국의 인재들이 어울려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함께 만들었다. 인텔, 야후, 이베이, 구글 등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회사의 절반이 이민자에 의해 세워졌으며 기업뿐 아니라 학교와 상점 등 거리 곳곳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창조경제의 모델이라는 이스라엘도 비슷하다.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함께 유입된 85만 명의 이주민 가운데 40% 이상은 연구 경력이 풍부한 대학교수, 과학자, 엔지니어들로 이스라엘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도인 텔아비브에서는 히브리어뿐 아니라 여러 언어들이 자유롭게 통용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이 글로벌 경제의 리더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인재를 받아들이고 이들과 어울려서 기술적 혁신을 이루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문화적 생태계, 즉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가 살아 있다.

미국에선 대학의 입학사정이나 기업의 채용에 있어서 다양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물론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이 있어야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을 만들려면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지는 혁신적 상품에 대해 “90%가 문화이고 10%가 기술”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시간대 경영학 교수인 스콧 페이지의 ‘다름(The Difference)’이라는 연구에 의하면 그룹의 다양성은 인지능력의 다양성을 가져와 문제 해결에 중요한 도구가 되며 특히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때는 개개인의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다양성의 힘은 더 나은 기업, 학교, 그리고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독일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도 문화적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 이노베이션이나 연구개발에 있어서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것이 입증되었다.

한국에서도 다름과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외국 인력의 경우도 단순한 인적자원을 넘어서서 한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촉진시켜 혁신을 가져올 중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단일 민족 의식을 강조해온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절실하면서도 어려운 과제이다. 최근 들어 한국 대학에서도 외국인 학생과 교수의 비중을 늘리고 있고 기업들 또한 외국인 전문 인력의 채용에 적극적이다. 정부도 제한적이나마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으며 다문화주의를 주요 정책의 기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경우 대학 평가기관들이 외국인 학생과 교수의 비율을 국제화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유치에 신경을 쓰는 것이고 다문화 정책도 외국인을 한국 문화와 제도에 동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전체 인구의 3%에 육박하는 외국인들을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제고하는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지 않는다.

인도계 기술 인력만 해도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들을 유치하려는 기업 간 국제적 경쟁도 치열하다. 그런데 이들이 막상 한국에 와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술이나 언어 문제가 아니라 음식을 비롯해 이들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해 부족이라고 한다.

피부색이나 문화의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나라에 인재들이 모일 리 없거니와 설령 모인다 해도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다름을 존중하는 사고, 특히 피부색, 음식, 문화, 종교가 다른 그룹을 이해하고 어울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고서는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 특히 대학에서 교과과정과 과외활동을 통해 다양성의 힘을 체험해야 한다. 대학은 다양한 그룹의 학생들이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교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이며 미국 대학에서는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구글, 페이스북 등 최첨단 정보기술(IT) 산업의 아이디어들이 모두 대학 시절에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공계 교육에도 다양성에 관한 과목을 포함시키고 한국적 맥락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어떻게 기술적 혁신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경험적 연구도 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기업이나 정부에서도 인력 채용이나 과제 수행에 있어 다양성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 순혈주의나 지연, 학연으로 엮인 동지의식으로 창의성이나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창조경제 생태계의 핵심은 폭넓게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문화와 그 다양한 인재들이 어울려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창조경제#인종#창의성#혁신#글로벌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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