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부리부리 박사가 부흥부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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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도토리 세 알에다 장미꽃 한 송이/달님 속 계수나무 별똥별 하나/이것저것 쓸어 모아 발명을 한다 발명을 한다.’ 1976년부터 2년 남짓 KBS에서 방영한 어린이 뮤지컬 가면극인 ‘부리부리 박사’ 주제가의 한 도막이다. 도토리, 장미꽃, 계수나무, 별똥별. 이런 재료를 가지고 무엇을 발명할 수 있을까? 과학이 아니라 마법에 가까워 보인다.

부리부리 박사(부엉이)는 원래 ‘다람쥐 삼형제’의 후속으로 방영됐다. 부리부리 박사의 발명품을 놓고 달랑, 잘랑, 졸랑 삼형제(다람쥐)가 컹컹이(늑대), 쌩쌩이(여우)와 벌이는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매회 선보이는 신기한 발명품 덕에 주인공인 다람쥐 삼형제보다 부리부리 박사의 인기가 더 높아지자, 제작진은 다람쥐 삼형제를 이사 보내고 후속으로 부리부리 박사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다람쥐 삼형제는 딩글이, 댕글이, 동글이 삼남매로 바뀌고, 컹컹이와 쌩쌩이는 심술쟁이 훼방꾼으로 남았다.

당시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과학자는 항상 ‘김박사’였다. 로보트 태권브이의 김박사, 우주소년 아톰의 김박사, 철인 28호의 김박사. 당시 국내 과학자는 모두 김씨 성을 가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악역 과학자도 있다. 태권브이에서 붉은 제국의 엥겔 박사, 개구쟁이 스머프에서 연금술사 가가멜. 어쨌든 부리부리 박사는 과학자를 조연에서 주연으로 승격시킨 상징적인 캐릭터다.

부리부리 박사의 발명은 실패투성이다. 대부분 우스꽝스러운 실수로 인한 것이다.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가 실패하면 온통 검댕이 묻은 얼굴로 허겁지겁 숨을 곳을 찾고, 다람쥐 세 마리가 뒤따라가며 ‘엉터리 박사’라고 놀려댔다. 아무리 실패하고 놀림 받아도 부리부리 박사는 발명이 정말 재미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했고 스스로 과학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나는야 부리부리 부리부리 박사/나는 나는 부리부리 박사.’

부리부리 박사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달팽이자동차를 발명한 뒤 다람쥐 삼형제에게 운전방법과 함께 준법정신을 가르치지만, 정작 본인은 달팽이자동차를 과속으로 몰다 사고를 내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교훈을 확인시켜 준다. 로켓을 발명하여 화성 탐험에 나섰다가 나침반을 달지 않아 이름 모를 별에 불시착하고, 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게 만드는 신기한 약을 만들었다가 그 부작용으로 소동을 겪는 식이다.

‘부엉이 곳간’이라는 말이 있다. 부엉이는 새끼를 위해 둥지에 이것저것 모아두는 버릇이 있다고 해서 살림살이가 부쩍부쩍 늘어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제가에서 보듯 부리부리 박사도 ‘이것저것 쓸어 모아 발명을 한다.’ 과학기술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메시지다. 부엉이가 자주 우는 마을에 부자가 많다는 속설도 있다. 부엉이 암컷은 ‘부항 부항’ 울고 수컷은 ‘부헝 부헝’ 우는데, 부자가 될 사람에게는 ‘부흥 부흥(富興 富興)’ 운다고 한다.

부리부리 박사는 방송계에는 지나간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일지 모르지만, 과학기술계에는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부리부리 박사는 국내 기술로 완성한 최초의 가면인형극이다. 당시 KBS는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해 초저녁 시간대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한 어린이 프로그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국내 기술로 만든 프로그램이 주인공을 과학자로 설정했다. 첫 회가 나간 1976년 4월 17일은 과학의 날(4월 21일)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현재 활동하는 40, 50대의 과학자 가운데 상당수가 부리부리 박사를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어떻게 하면 부리부리 박사를 되살릴 수 있을까? 부리부리 박사가 살아나면 부엉이가 ‘부흥 부흥’ 울게 될까?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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