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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25>신분상승한 생선, 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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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25>신분상승한 생선, 참치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입력 2018-01-08 03:00수정 2018-01-08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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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싸구려 취급을 받았던 참치는 수요가 크게 늘면서 고급 먹거리가 됐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1970년대 초 런던에서 잠시 스시 레스토랑 매니저를 한 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100kg 정도의 참치를 프랑스에서 배달시켰다. 도쿄 긴자의 유명한 스시 조리장인 이가라시가 2년간 계약을 맺고 매달 참치 해체 쇼를 진행했다. 요즘만큼은 아니지만 당시에도 무척 고가였던 참치는 머리 부분을 잘라내고 네 쪽으로 나누어졌다. 등 부분은 빨강 또는 아카미라 부르고, 배에 붙어 있는 부분은 주도로와 오도로로 나뉜다. 전체 참치 중 15% 정도이고 그중 가장 기름진 오도로 부위는 5분의 1 정도다.

참치 해체가 끝나면 뼈에 붙어 있는 참치 살을 수저로 긁어 담아 덮밥 재료로 쓴다. 머리 부분은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식사로 제공되었다. 참치 사시미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어서 항상 참치 해체 날을 기다렸던 기억이 새롭다. 일본은 전 세계 참치 생산량의 5분의 1을 소비한다. 에도시대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먹었던 생선으로 ‘고양이조차도 참치는 그냥 밟고 지나간다’고 할 만큼 생산량이 많았다. 당시에는 하급 식재료라서 장사꾼들이나 감춰 두고 먹던 음식이었다. 기름기가 많아 빨리 상하는 까닭이었다. 에도시대 중엽 간장이 개발되면서부터 간장에 절인 아카미가 유행하게 되었다.


‘도로’는 ‘부드럽게 스르르 녹는다’는 뜻으로 당시에는 남아도는 이 부분을 버리거나 퇴비로 사용했다. 당시 100kg 참치 한 마리 가격이 현재의 4만 원 정도 가치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버려지는 도로 부분이 냄비에 대파를 넣은 참치 요리로 개발되었다. 뼈 가장자리의 참치와 도로를 넣고 끓여 국물 맛을 살리고 파를 넣어 먹는 요리. 즉 참치보다는 파를 먹기 위한 요리였다. ‘네기마 나베’라고 해서 요즘에도 고급 참치전문점에서 볼 수 있다.

냉장고의 발달과 함께 서양 음식이 보급되면서 일본 사람들의 입맛도 변했다. 뱃살에 있는 기름기가 미식가의 호평을 받으면서 1960년대부터 참치 수요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크게 5종의 참치를 볼 수 있다. 파란색 꼬리 참치는 최고 1억 원 정도로 가장 비싸다. 바다의 검은 다이아몬드라 불리며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취급하고 있다. 알바코르나 노란 지느러미 종은 통조림용이며, 가장 흔한 눈이 큰 참치는 생산량이 많아 일반적으로 사시미, 스시, 회전초밥집, 슈퍼에서 볼 수 있다. 참치의 85%는 스시나 사시미 등 날것으로 소비되고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다. 2002년 일본의 긴키(近畿)대에서 양식에 성공한 ‘도로참치’는 아가미가 주도로와 비슷한 식감을 가졌다.

이가라시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 어느 날 그의 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메인 요리는 참치 머리였다. 유자와 소금만으로 간을 한 후 5시간을 바비큐 그릴에 넣고 구워낸 요리다. 그릴에서 꺼낸 참치는 거대한 숯 덩어리처럼 보였다. 시커먼 껍질 부분을 잘라낸 후 머리 부분과 아가미를 분리하고 눈알과 주위의 액체들을 조심히 스푼으로 떠 담았다. 최고의 콜라겐으로 피부에 특히 좋다고 여자들에게 설명하며 기름기를 줄여주는 폰즈 소스와 함께 내밀었다. 40여 년 전 일로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추억이기도 하지만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이제는 네가 속한 곳으로 가라”며 그가 옆에 다가와 한 말이다. 당시 호텔에서 프랑스 요리를 했던 내가 일본 음식과 사람, 언어가 그리워 잠시 외도를 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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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참치 해체#고급 참치전문점#네기마 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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