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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왕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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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왕의 밥상

황광해 음식평론가입력 2017-05-10 03:00수정 2017-05-1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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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 음식평론가
‘왕의 밥상’은 허구다. 먹고 싶은 대로, 한 상 가득 차리고 ‘왕의 밥상’이라 부른다. 호화로운 식재료와 산해진미. 그런 왕의 밥상은 없었다.

518년, 27명의 국왕이 조선을 다스렸다. 27명의 국왕 중 호화롭게,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었던 이는 연산군 한 명이었다. 귀한 과일을 수입하고, 전국의 모든 귀한 식재료를 강제로 모으고 먹었다. 폭군이고 결국 왕좌에서 쫓겨났다.

광해군도 반정으로 쫓겨났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8년 즉위했다. ‘잡채상서(雜菜尙書)’ ‘사삼각노(沙蔘閣老)’ ‘김치정승(沈菜政丞·침채정승)’ 등은 광해군 무렵 등장하는 표현이다. 간신들이 잡채, 더덕, 김치 등을 바치고 높은 벼슬을 얻었다는 뜻이다. 광해군은 덕수궁에서 즉위했다. 덕수궁은 성종의 친형 월산대군 집이었다. 덕수궁에서 선조가 살았고, 광해군이 즉위했다. 김치, 더덕, 잡채는 예나 지금이나 산해진미는 아니다. 사저에서 즉위하고 신하들이 주는 김치, 더덕, 잡채를 얻어먹었다.

조선을 다스린 것은 경국대전이다. 경국대전은 조선의 헌법이고 기본은 유교적 통치이념이다. 조선의 국왕은 경국대전과 선왕들의 행적을 따라 통치했다. 고종(1852∼1919)은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즉위 첫해(1863년), 어린 왕에게 노신하들이 강론한다. “(공자는) 밥은 깨끗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회는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食不厭淨 膾不厭細·사불염정 회불염세)”고 했다. 신하들이 설명한다. “깨끗한 밥과 가는 회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좋게 여기나 꼭 이와 같이 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좋게 여김’은 이치고 ‘꼭 이와 같이 하고자 함’은 욕심입니다. 꼭 하고자 하면 바로 구복(口腹)의 욕심입니다.” ‘구복’은 입과 배, 즉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는 것을 뜻한다. 굳이 맛있는 것 많이 먹겠다고 욕심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군왕은 ‘맛있게, 많이’가 아니라 율법에 따라 바르게 먹어야 한다.

태종과 영조는 강력한 왕이었다. 태종은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즉위 13년(1413년) 7월, 가뭄이 들었다. 당연히 금주(禁酒)다. 신하들이 ‘가뭄 대비책’으로 올린 상소 중에 ‘태종의 술’이 등장한다. 에둘러서 ‘임금부터 금주를 엄격히 금하라’는 내용이다. 태종은 “내가 술 많이 마시고, 좋은 안주 먹는다고 하는데, 궁중 주방 조리사한테 물어보면 별것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변명한다.

영조는 금주령을 강력하게 지켰다. 국가 행사 중 제일 중요한 종묘 제사와 중국 사신 접대에도 술 대신 단술을 사용케 했다. 신하들이 “(금주령은 국내 사정인데) 외국 사신에게 술 대신 단술을 주는 것은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하자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제사에도 단술을 사용한다고 하라”고 자른다.

영조가 일흔다섯 살 되던 해(재위 44년·1768년) 7월, 노대신 김양택과 나눈 대화가 남아 있다. 영조가 “송이버섯, 생전복, 어린 꿩, 고추장, 이 네 가지가 맛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내 입맛이 아주 늙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이나 전복은 고급 식재료다. 김양택이 “생전복을 별도로 올리라 할까요”라고 묻는다. 영조가 답한다. “생전복 채취가 쉽지 않다. 지금 생전복을 올리라는 것은 민폐다. 어찌 내 입맛을 위해서 생전복을 올리라 하겠는가.”


존재하지 않았던 ‘왕의 밥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제국 시기를 거친 로마, 유럽, 중국, 일본 어디에도 제왕의 화려한 밥상은 없다. 왜 하필 우리만 왕의 밥상을 이야기할까. 결론은 슬픈 식민시대의 잔재다. 그들에게는 무너진 왕조의 식민시대가 없었다.

궁중에서 하급관리로 일했던 안순환은 궁중요리를 내세우며 1903년 ‘명월관’을 세웠다. 이게 궁중요리의 시작이다. 명월관은 식당이 아니라 고급 술집이었다. 밥상이 아니라 터무니없이 비싼 술상을 내놓았다. 장사를 위해 엉뚱하게 화려한 술상을 만들고 ‘궁중요리’라고 이름 붙였다. 일상의 음식이 아니라 궁중행사 때나 볼 수 있었던 음식들이다. 이걸 ‘왕의 밥상’에 뒤섞었다. 여기에 ‘왕이 데리고 놀던 기생’까지 얹었다. ‘왕이 기생을 끼고 흥청망청 먹었던 궁중요리’라고 내세우고 팔았다. 왕이 데리고 놀던 기생은 없었다. ‘왕의 밥상’도 없었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왕의 밥상#신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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