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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36>지구는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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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36>지구는 아팠다

김용석 철학자입력 2017-11-25 03:00수정 2017-11-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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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
“사과 한 알이 떨어졌다. 지구는 부서질 정도로 아팠다.”

이상(李箱)이 쓴 두 줄짜리 시 ‘최후’의 첫 행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함께 등장한 근대과학의 충격을 묘사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명사적 맥락 없이도 이 한 구절은 대단합니다. 무엇보다도 물질적 자연에 대한 시인의 감수성이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광물로 가득하다는 지구가 감각과 감정의 생명체로 살아 있는 듯합니다.

지구 자연이 이렇게 감성이 풍부하다면 인간에 대한 배려와 연민도 가질 법합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에 대해 대체로 무심(無心)한 것 같습니다. 과학적 자연사에 따르면 지구는 인류가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지진과 화산 폭발로 에너지를 분출해 왔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사람들에게 그것은 ‘무심한 자연재해’였습니다.

하지만 무심한 자연재해가 인류에겐 변화와 변혁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지진의 역사에서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은 빠지지 않고 거론되어 왔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다시금 조명되었지요. 그것은 당시 서구인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뿌리째 바꾸어 놓은 대재앙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세상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인식했던 볼테르와 루소의 ‘사상적 대전환’도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실용적인 의미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삶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을 실용적이라고 정의한다면, 지진 연구를 위한 철학자 칸트의 기여 또한 소중합니다. 칸트는 당시 대지진을 신의 응징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지금의 과학으로 볼 때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을 계기로 지진학이란 학문 분야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무심한 자연재해를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대비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리스본 지진이 일어났던 역사적 시점도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산업혁명의 여명기였던 18세기 중반 이후의 지진은 무심한 자연재해 때문만은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자연에 대한 인류 문명의 영향으로 인해 지구의 커다란 변화와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석유·가스 같은 자원 채굴, 지열발전 등 다양한 목적으로 지층에 구멍을 뚫는 시추 작업들이 지진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 현상이 지진과 연관이 있다는 학설도 나왔습니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면 지구의 텍토닉 플레이트(tectonic plate), 즉 판상(板狀)을 이루어 움직이고 있는 지각의 표층에 대한 압력 균형이 깨져 지진의 빈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땅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땅 밑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이는 과다한 인간의 활동이 무심한 지구를 유심(有心)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한다고 할 수도 있지요. 과학적 엄밀성의 관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가이아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원래 ‘유심한 유기체’였는지도 모르지요.

중요한 것은 무심한 자연재해에 ‘대비’하듯이 유심해진 지구에 대해서는 ‘조심(操心)’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비든 조심이든 안전을 위한 것입니다. 대비는 인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조심은 ‘자연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연에 좀 더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지구의 아픔을 느끼는 시인의 감수성을 갖고 자연을 대하는 것입니다.

김용석 철학자


#이상#최후#뉴턴#지구#자연재해#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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