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31>‘역설적’인 야구의 인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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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
김용석 철학자
딱! 파란 가을 하늘로 하얀 야구공이 날아갑니다.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다 날려 보낼 듯합니다. 사람들은 뭔가 잊기 위해서 스포츠를 즐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뭔가 의미를 찾으면서 스포츠를 즐기면 더 재미있습니다. 야구의 몇몇 특징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생각의 화두를 던집니다.

야구는 집에서 출발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입니다. 타자가 주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점수를 얻어가기 때문입니다. 야구 용어에서 집(Home)이란 말은 중요합니다. 홈인, 홈런처럼 말입니다. 다른 경기에서는 공이 정해진 공간에 들어가야 점수가 납니다. 야구에서는 사람이 들어오면서 점수를 냅니다.

공으로 점수를 내는 경기에서는 공이 소중합니다. 웬만해선 경기 중에 공을 바꾸지 않지요. 경기 중에는 관중에게 공을 선사하지도 않습니다. 야구에서는 사람이 점수를 내므로 공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구는 경기 중 관중들에게 많은 공을 선사합니다. ‘인심 좋은’ 경기입니다. 공들은 떠나고 사람은 집에 돌아오는 경기, 여기에 야구 고유의 인간미가 있습니다.

야구는 단체 경기입니다. 그런데 투수와 타자의 대결을 보고 있으면, 단체 경기 안에 개인의 경기가 중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투수와 타자가 맞서는 순간마다 일대일의 경기 같은 착각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마운드의 투수와 홈플레이트의 타자 사이에 치열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으로 이어지는 직선의 기운, 그 긴장은 관객의 시선을 온통 집어삼킵니다.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고 다음 투구 사이의 인터벌에 이 긴장은 돌연 해소됩니다. 이 반복되는 켕김과 풀림은 변증법의 백미입니다. 인심과 인간미에 더해 야구는 인문적 감동을 선사합니다. 야구 경기는 대안, 희생, 구원 그리고 기다림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구는 수시로 대안을 제시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경기입니다. 공격 팀에서는 대타와 대주자를 언제든 활용할 수 있습니다. 팀을 위해 필요하면 번트와 외야 플라이로 희생하는 선수가 등장합니다. 수비 팀에서는 위기 때마다 여러 명의 구원투수를 투입할 수 있습니다. 투수 교체 때마다 연습 투구를 할 수 있도록 꽤 오래 기다려 주기도 하지요. 이것이 투수 외의 다른 선수들에게는 잠깐 휴식의 시간이 됩니다. 여기에서도 경기의 긴장과 해소는 교묘한 변증 관계를 이룹니다.

이런 야구의 특성들은 관객이 역설적으로 야구를 즐기게 되는 잠재의식적 요인이 됩니다. 역설적이라 함은 우리 일상의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희망사항일 뿐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 안 될 때, 누가 대신 경쟁의 마당에 나가주고 대신 뛰어주는 ‘인생의 대타와 대주자’는 결코 흔치 않지요. 나를 밀어주기 위해 누군가 선뜻 희생하는 일도 참 드뭅니다. 위기에 처한 나를 구원하기 위해 누군가 항상 준비되어 있고 언제나 나서는 경우가 일상사는 아니지요. 때론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우리 일상입니다.

다른 많은 운동 경기에서 그 경쟁과 투쟁 방식은 우리 현실과 꼭 닮았습니다. 그러나 야구에는 일상 현실이 전도된 차원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야구는 판타지입니다. 현실에서는 희망의 수준에 있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 부챗살 모양의 야구장이니까요. 관중은 부챗살처럼 펼쳐진 환상적 구장에서 그들의 잠재의식이 희망해 온 세상을 실감나게 만납니다. 우리 잠재의식의 노스탤지어에 화답하는 야구에 열광합니다.

김용석 철학자
#야구#야구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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