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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영혼을 잠식하는 부유하는 15억 ‘벌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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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영혼을 잠식하는 부유하는 15억 ‘벌레들’

김재호 과학평론가입력 2018-03-06 03:00수정 2018-03-06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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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1952년 12월 영국 런던은 두꺼운 스모그에 뒤덮여 온 사방이 어두웠다. 하늘이 깜깜한 날씨는 5일 동안이나 계속됐다. 이로 인해 3주 만에 약 4000명이 사망했다. 이후 폐질환으로 8000명을 추가로 사망하게 한 런던 스모그는 그 자체로 재앙에 가까웠다. 스모그는 훨씬 이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1873년엔 700명이, 1911년엔 1150명이 대기 오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사망의 원인을 스모그만으로 단정하긴 어렵다. 스모그의 원인 또한 분분하다. 다만, 기저 질환이나 대도시에 거주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건 명백하다. 평소 앓고 있던 질환 중에 호흡기병이나 정신병이 있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특히 런던의 사망자들 중에 직접적인 호흡기 질환이 아니라 우울증으로 자살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최근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연구진은 미세먼지와 자살의 상관성을 밝혀내 충격을 안겨줬다. 이번 연구 결과는 해외 저널인 종합 환경 과학지에 발표됐는데, 이 같은 경향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도 2015년에 이미 비슷한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그동안 미세먼지가 뇌나 심장 질환 등에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는 많았으나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다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연구결과는 드물었다.

2002∼2013년 성인 26만5749명을 조사한 결과 0.2%인 564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데이터를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율이 높은 집단은 도시가 아닌 곳에 사는 60대 이상 남성이며, 경제적 수준이 낮고 기저 질환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가장 오랜 기간 미세먼지(PM10)에 노출된 성인은 가장 적은 기간 미세먼지에 노출된 성인과 비교했을 때 자살 가능성이 4.03배나 높아졌다. 같은 비교 조건에서 이산화질소(NO₂)의 경우 1.36배, 이산화황(SO₂)은 1.65배 차이가 났다. 특히 평소에 앓고 있던 신체 혹은 정신 질환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36%나 더 많이 충동적인 결정을 했다. 질환 중엔 심혈관 질환이 미세먼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미세먼지 혹은 초미세먼지(PM2.5)나 이산화질소 혹은 오존 같은 오염 물질에 오랜 기간 노출되면 우울증이나 불안감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10개월 동안 초미세먼지에 노출된 실험 쥐는 순환성 염증이나 해마의 구조적 변화가 늘어나 우울과 같은 정서적 반응 혹은 인지 장애를 보였다.

대기의 오염 물질이 어떻게 자살과 연결되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호흡기로 주변 입자나 기체 오염 물질에 노출되면 신체 안에서 염증을 유발시키는 사이토카인이 활성화한다는 게 알려져 있다. 호르몬 역할을 하는 당단백질인 사이토카인은 신체 시스템에서 신경세포 단위의 염증 그리고 유해산소가 급격히 늘어나는 산화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이로써 우울과 불안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거나 한 사람들에게서 각종 염증 유발 사이토카인이 상당한 수준 발견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도 밝혔듯이 대체 어느 정도가 안전한 미세먼지 수준인지 말하기 어렵다. 또한 연구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대체 얼마만큼 미세먼지나 오염 물질에 노출되었는지 측정하기가 어렵다. 계절적 변화 역시 고려되지 못했다. 다만, 명백한 건 이미 갖고 있던 질병과 먼지로 뒤덮인 도시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공기청정기와 환풍기 같은 시설을 갖추지 못한 취약 계층은 미세먼지로 인한 우울과 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린아이들에겐 대기 오염이 주의력 결핍 장애와 정신 질환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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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무서운 건 실외보다 실내의 조건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외보다 실내 미세먼지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고 이상하게 불안하다면 주위의 공기를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원래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이 아니라 환경 탓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좋은 날씨에도 인간은 약 15억 개의 먼지 입자를 매일 들이마신다. 인간은 원래 자연에 존재하는 먼지를 잘 견딘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먼지, 즉 자동차와 공장에서 파생된 (초)미세먼지엔 쉽게 무너진다.

작가 찰스 디킨스(1812∼1870)는 런던을 언제나 어둡고 음습하며 안개(스모그)가 자욱한 도시로 묘사했다. 공기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서울이 칠흑 같은 하늘로 묘사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베이징은 이미 공기 안 좋은 도시로 이미지가 박혀 버렸다. 숨통을 조여 오는 미세먼지가 단순히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에 악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면 마음에도 마스크를 써야 할 판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스모그#폐질환#런던#대기오염#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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