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중성미자에 숨겨진 우주 탄생의 비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1987년 2월 23일, 대마젤란성운에 있는 거대한 별이 초신성 폭발을 했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 중 빛으로 변한 건 1% 정도뿐이고, 나머지 99%는 중성미자로 변해 우주로 쏟아졌다. 더욱 놀라운 건 중성미자가 지구에서 포착되고 난 몇 시간 후에 초신성 폭발이 관측되었다는 점이다. 중성미자가 별의 운명을 미리 알려준 셈이다.

이처럼 중성미자는 우주 먼 곳의 비밀을 밝혀주는 단서가 된다. 아울러 중성미자는 우주가 탄생할 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기원과 연결된다. 우주는 1cm³당 평균 350개의 태곳적 중성미자를 보내오고 있다. 빅뱅 때부터 돌아다니고 있는 중성미자다.

중성미자는 이 우주를 가득 채우며 점령하고 있다. 매 순간 중성미자 수백억 개가 내 옆을 지나다닌다. 하지만 이 중성미자 녀석들을 측정해 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자는 양성자나 중성자의 2000분의 1 정도 무게를 띠는 데 비해, 중성미자는 전자의 몇만분의 1도 안 된다. 태양은 내부의 핵반응으로 초당 수백조 개씩 중성미자를 쏟아낸다. 그래서 중성미자는 그 어디에나 있지만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중성미자가 다른 입자들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은둔형이기 때문이다.

중성미자의 별명은 ‘유령 입자’다. 중성미자는 양과 음의 전하가 없고, 물질을 쉽게 통과한다. 이 정도면 거의 무법자에 가깝다. 따라서 중성미자는 우주 안을 거의 최단 거리인 직선으로 여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빛보다 빠르다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중성미자는 우주에서 가장 교묘한 존재다.

최근 ‘사이언스’에선 중성미자의 무게를 측정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2001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독일 카를스루에 중성미자연구소의 실험을 소개한 것이다. 6000만 유로(약 800억 원)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엔 140여 명의 연구진이 투입돼 중성미자를 연구 중이다. 내년 즈음 구체적인 데이터를 확보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중성미자의 무게를 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밝혔다.

인류가 중성미자의 존재 자체를 밝혀내는 데는 거의 100년이 걸렸다. 1910년대 이미 중성미자의 존재를 밝혀낼 수 있는 실험이 진행됐지만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1995년 프레더릭 라이너스는 중성미자의 존재를 감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그는 중성미자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납을 3광년 두께로 쌓아야 겨우 한 번 부딪힐 거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중성미자의 관측은 어렵다.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은 중성미자의 진동을 발견한 일본의 가지타 다카아키와 캐나다의 아서 맥도널드가 공동 수상했다.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밝혀낸 공로가 인정됐다. 중성미자 진동이란 3종류의 중성미자인 전자, 뮤온, 타우가 서로 형태를 바꾸는 현상이다. 즉 질량이 있다는 뜻이다. 3종류 중 적어도 하나는 0.05eV(전자볼트)로, 거의 10의 ―19제곱(10-19) 정도의 일의 양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3종류 각각의 무게 차이는 아직도 모른다.

지구의 내핵에선 방사성 붕괴가 일어나며 정말 많은 중성미자가 쏟아져 나온다. 또한 천체가 폭발해 우주 선(ray)이 지구 대기의 원자와 충돌할 때 중성미자가 만들어진다. 특히 중성미자는 인간의 몸속에서 칼륨이 방사성 붕괴를 할 때도 발생한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방사능 붕괴로 매 초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중성미자가 태어난다.

남극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중성미자 망원경인 ‘아이스큐브’가 있다. 1km³의 얼음으로 만든 망원경은 5000개 이상의 탐지기를 달고 있다. 이로써 1년에 10번 정도 극히 드물게 고에너지의 중성미자를 감지한다. 과학자들은 어렵게 발견된 중성미자에 빅버드, 괴짜 돼지박사란 별명을 붙였다.

중성미자는 물질의 다름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알려줄 실마리를 갖고 있다. 현재는 원자 내 전자의 개수 차이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중성미자가 무게(질량)를 갖고 있다면 물질의 특성을 변화시킬 힘이 있을 것이다. 다름의 원인을 찾기 위해선 소립자 파악이 중요하다. 너와 내가 다른 궁극적 이유, 바위와 나무가 다른 원초적 이유 말이다. 한마디로 이제까지 알고 있던 물질의 표준 모형이 흔들리는 것이다. 따라서 중성미자의 비밀이 드러나면 우주의 탄생, 더 나아가 인류의 기원을 밝혀줄지 모른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중성미자#우주#유령 입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